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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유족회도 야스쿠니 A급전범 '분사' 검토 나서

야스쿠니 참배 강행 우익강경파들 주장과 달라 주목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논란이 일본 국내외에서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20일 발견된 '일왕메모' 이후 참배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 유족회가 A급 전범의 분사를 공식 거론하는 등 야스쿠니 논란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를 비롯한 일본의 우익강경세력들은 야스쿠니 참배 입장을 강하게 고수하고 있는 반면 야스쿠니 신사와 일본 자민당의 핵심 후원세력인 일본유족회에서 분사 주장이 잇따라 제기되고 관련 회의도 열릴 예정이어서 향후 논의내용과 9월 후임총리선거를 둘러싼 쟁점화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본유족회 A급전범 분사관련 검토회의 설치키로

2일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에 따르면, 일본 유족회(회장 고가 마코토(古賀誠) 전 자민당 간사장)은 이날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合祀)된 A급 전범의 분사 관련 논란에 대해 검토회의를 설치할 방침을 밝혔다.

이날 오후 열리는 회장단회의에서 고가 회장이 제안할 경우 부회장들도 응할 전망이며, 야스쿠니 신사 측이 “분사는 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신사의 최대 지원 조직인 유족회에서 분사 검토에 나설 경우 이에 대해 대응에 나서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마이니치신문>은 그러나 유족회가 자민당의 주요 지지단체라는 점에서 분사문제가 오는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후임을 결정하는 총재선거의 쟁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경계해 설치시기나 검토 시작은 총재 선거 후인 9월말 이후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고가 회장은 지난 5월 자민당 총재선거에 대한 고가 파벌의 정책제언에서 “분사의 검토”를 포함하도록 개인적 견해를 전제로 제안했으나 결국 정책제언에 포함되지 않았고, 이후 각종 회합 등을 통해 분사론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고가 회장은 중국 방문 중인 지난달 19일에는 당시 중국 공산당 간부와의 회담에서 자신의 분사론에 대한 생각을 설명했고 이에 대해 중국측은 “주목하고 있다. 하나의 좋은 방향이다”라고 평가해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유족회에서는 이제까지 분사에 대한 반대의견이 우세했고, 2월에 작성한 종합활동방침에서도 “야스쿠니 신사 자신의 문제이고, 신사가 응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라고 밝혀 분사문제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작년 8월15일 참배 인파가 몰린 야스쿠니 신사 모습 ⓒ 야스쿠니 신사


<마이니치신문>은 고가 회장이 지난 5월말 유족회 임원회의에서 분사검토의 필요성을 제기할 당시에는 갑작스럽다는 의견과 함께 간부들부터 당혹함과 반발의 목소리가 많았다며, 그러나 지난달 20일 고 히로히토(裕仁, 1901-1989) 일왕이 생전에 A급 전범 합사에 불쾌감을 느끼고 못마땅하게 여겨 참배를 중단했다는 메모가 발견된 이후 유족회내에서 동요의 움직임이 일었다고 전했다.

특히 히로히토 일왕의 측근이 작성했던 이 메모로 인해 유족회 간부들 사이에서 “B, C급 전범의 분사에까지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면, A급 전범의 분사에 대해서는 서로 이야기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의견이 증가하고 있다"며, 3명의 부회장은 당초 모두 분사에 소극적이었지만 이같은 기류 변화를 근거로 “유족회로서의 총의를 확인하기 위해 서로 이야기해 볼 필요는 있다”면서 코가 회장이 제안한 검토회의 설치에 동의하게 됐다고 이 신문은 최근 흐름을 전달했다.

이같은 흐름에는 A급 전범의 후손 중 일보 유족들이 야스쿠니 합사 반대입장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도쿄전범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기소돼 처형된 히로타 고키(廣田弘毅) 전 일본 총리의 손자 고타로(弘太郞)씨는 최근 <아사히(朝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히로타 가문이 1978년 합사에 동의한 기억이 없다. 지금도 야스쿠니신사가 조부 제사를 지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 할아버지의 야스쿠니신사 합사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이는 히로타 가문을 대표하는 생각으로 야스쿠니신사에 간 적은 있으나 국가를 위해 숨진 전몰자를 생각해 합장했을 뿐”이라며 “야스쿠니신사와 히로타 가문과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히로타 전 총리는 처형된 7명의 A급 전범 가운데 유일하게 군인 출신이 아닌 문관으로 1937년 외상 재직 당시 발생했던 난징(南京)대학살 때 잔학행위를 중단토록 각료회의에서 주장하지 않은 책임으로 기소됐으나, 태평양전쟁에는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져 그의 처형은 논란을 낳기도 했다.

히로타 가문은 1955년 4월 옛 후생성이 화장된 A급 전범 7명의 유골을 유족에게 건넸을 당시 유일하게 이를 받지 않았으며 전범 유족들의 모임인 유족회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야스쿠니신사 합사 심사는 전쟁 전의 경우 신사를 소관하는 육.해군성이 했으나 전후 종교법인으로 바뀐 뒤 신사로 옮겨졌다. 야스쿠니측은 옛 후생성과 해당 지자체에서 확인된 전몰자 등의 자료를 근거로 합사 여부를 판단했으나 이 과정에서 유족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김홍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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