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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모욕적 국제결혼광고는 사실상의 매매혼"

30여개 시민사회단체, 인권위 진정

시민단체 ‘나와우리’, 언니네트워크, 한국여성의전화연합,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민주노동당 여성위원회 등 30여개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차별적 국제결혼 광고대응을 위한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이 11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성.인종 차별을 양산하는 국제결혼 광고’에 대한 인권침해 조사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공동행동은 이 날 기자회견을 통해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 후불제, 환불가능,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실린 국제결혼 중개업소의 광고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며 “국제결혼 중개업체들의 광고는 현수막, 신문 광고 등에서 가장 자주 접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규제와 처벌은 미흡하다”고 인권위 진정 배경을 설명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빈국 여성들을 수입하다시피하는 국내 결혼중개업자들의 행태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촉구했다 ⓒ뷰스앤뉴스


“농촌총각 문제도 있지만 그렇다고 여성 인권문제 좌시는 안돼”

특히 공동행동은 베트남과 같은 동남아시아 빈국들에서 ‘수입’되다 시피하고 있는 여성들의 인권 문제에 대한 한국 남성들의 역지사지를 강조했다.

김성미경 인천여성의전화 부회장은 “오전에 베트남 현지에서 한국 남자들이 1백여명도 넘는 베트남 미혼 여성들을 면접을 보고 난 후 곧바로 오후에 결혼예물을 사러 다니고 이튿 날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어떻게 정상적인 결혼과정이라 할 수 있냐”며 “이는 국제결혼을 가장한 매매혼, 여성 상품화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김 부회장은 “소위 국내 국제결혼 중개업소에서는 ‘숫처녀가 아니면 100% 환불을 보장해 드립니다’, ‘절대 도망가지 않아요’라는 차마 보기에도 부끄러운 광고가 버젓이 거리 곳곳에 나부끼고 있다”고 국제결혼 중개업소의 작태를 비난했다.

더 나아가 김 부회장은 “만약 우리나라 농촌 총각들을 상대로 ‘농촌 총각과 결혼하세요’, ‘숫총각이 아니면 100% 환불 보장 해 드립니다’라는 광고가 거리에 나붙는다면 그 때도 과연 가만 있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베트남 현지 여성들을 면접하며 하는 짓이라곤 고작 나이와 학력을 따지고 에이즈에 걸려있나, 없나를 가름하는 성병 검사”라며 “도저히 이같은 여성 인권침해 문제를 좌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 부회장은 ‘동남아시아 등 빈국 여성들과 중개업소를 통해 결혼한 모든 한국 남성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정상적인 결혼과정을 통해 행복한 가정 살림을 꾸린 한국 남성분들과 이주 여성분들이 이 문제로 도매금으로 치부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고, 또 한편으로는 잘 사신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부회장은 “그렇다고 해도 현지에서 엄연히 자행되고 있는 수없는 여성인권 유린 실태에 대해 침묵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드러난 문제사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도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업으로 규제 못하는 결혼중개업법, 관련법 제정 시급

이처럼 한심한 국제결혼광고가 넘처나고 있는 이유는 현행 국제결혼중개업이 자유업으로 분류돼 아무런 법적, 제도적 규율을 받지않고 있기 때문.

이에대해 김춘진 열린우리당 의원은 지난 해 2월,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제정법률안인 이 법안의 골자는 ▲결혼중개업의 신고제와 허가제 도입 ▲결혼중개업자의 허위.과장광고의 금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조사.검사 및 영업의 취소.정지.폐쇄 등 이다.

해당 법안은 ‘허위.과장된 정보제공 등의 금지’(11조)를 적시해 국제결혼중개업소 등의 광고 내용에도 규율할 수 있게 했다. 또 각종 종이매체, 인터넷 상에 올라오는 모든 광고도 이 법의 규율대상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해당법안의 한계는 그 ‘처벌 수위’에 있다. 이 법안은 결혼중개업자들이 법을 위반할 경우, 영업정지명령, 영업장 폐쇄와 같은 행정처분에 그치고 있다. 사실상의 솜방망이 처분에 불과한 셈이다.

김 의원측도 본지와의 통화를 통해 “이 부분에 대한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며 “더 강력한 제재를 위해서는 당정협의 후 가능할 것 같다”고 밝혔다.

“현재 법으로도 어느정도 규제는 가능... 지자체가 직무유기하고 있어”

하지만 김 의원의 결혼중개업법 제정안을 놓고 공동행동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의 소라미 변호사는 “옥외광고물등관리법 5조에서 ‘음란 또는 퇴폐적 내용 등으로 미풍양속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해당 지자체가 철거조치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자체는 그동안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소 변호사는 “불법 옥외광고물로 판정 돼 지자체의 처벌을 받는다 해도 고작 3백만원의 과태료만 내면 업자들은 또다시 영업을 재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소 변호사는 이같은 옥외광고물을 통한 불법광고 이외도 “생활정보지, 신문광고, 온라인 광고 등에 무수하게 실리는 국제결혼광고에 대한 규제가 시급하다”며 김 의원의 제정안에 대해 공감을 나타냈다.

한편 박인숙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은 "단순한 행정적 제재가 아닌 형사처벌을 포함한 좀 더 강력한 제재조항을 담은 제정안이 나와야 한다”며 김 의원의 제정안보다 더 높은 수위의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중개업에 대한 최초의 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1년 6개월이 다 돼 가도록 해당 상임위(보건복지위)는 아직 법안논의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이와관련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이번 하반기 국회에서도 과연 통과될 지 장담하기 힘들다”며 “너무 많은 법안들이 보건복지위에 몰려있어 국감 이후에나 논의가 가능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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