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김동오 부장판사)는 28일 공금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대한 보석을 허가했다. 정회장이 의왕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지난 4월28일이래 정확히 두달만의 일이다.

"화이트칼라 범죄 척결"을 외쳤던 천정배 법무장관의 말을 무색케 하는 조처다.

재판부 "피고에게 충분한 방어권 주기 위해"

재판부는 이날 "보석 보증금 10억원을 내는 조건으로 보석을 허가했다"며 “정 회장에 대한 보석 결정은 우리 법원이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는 불구속 재판의 원칙을 철저히 구현하고 피고인에게 충분한 방어권을 보장해 공판 중심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이 법정에서 비자금 부분에 대해 대부분 자신의 형사 책임을 원칙적으로 인정하고 있고, 김동진 현대차그룹 부회장 등 관련자에 대한 수사 및 기소가 마무리됐을 뿐 아니라 회사 관계자에 대한 조사나 관련자료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완료돼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도망이나 증거 인멸의 염려가 없어졌다고 판단했다"고 보석 이유를 밝혔다.

정회장 구속후 비자금 사용내역 등 모르쇠로 일관

그러나 재판부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검찰은 정회장이 비자금 사용 내역에 대해 함구하는 등 비협조로 일관하고 있다며 반발하는 분위기다.

검찰은 이달 초 정 회장이 "고혈압 등 건강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1천1백억원대의 비자금 용처 수사를 위해서는 구속이 필요하다"면서 보석허가에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검찰에 따르면, 정 회장은 구속후 검찰의 비자금 사용처 조사, 즉 '출구 조사'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등 비협조적 태도로 일관해왔다.

여론의 눈총도 따갑다.

정 회장은 앞서 지난 4월28일 계열사를 통해 1천3백8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횡령' 혐의와 채무과다로 부실해진 기업의 유상증자에 계열사를 참여시킴으로써 4천억여원의 손해를 끼친 '배임' 혐의로 구속됐었다.

이처럼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두달만에 풀려난 것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세간의 사법불신 여론을 한층 심화시키는 '특혜 중 특혜'라는 게 지배적 여론이다.

아울러 현대차 비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김재록 인베스투스 전 회장을 비롯해 박상배 전 산은부총재, 변양호 전 재경부 금정국장 등과의 형평성 차원에서도 정 회장 석방은 적절치 못한 조처라는 비판여론이 많아, 앞으로 사법불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