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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응원장서 쫓겨난 한 노점상 이야기

<독일월드컵> "여기가 어디라구 감히 잡상인이..."

대한민국과 토고전이 있던 13일 밤,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 앞 청계천에 마련된 월드컵 거리응원장에서는 노점상 이성수(가명, 48세)씨와 가로정비에 나선 용역반원끼리 몸싸움이 벌어졌다.

"응원장안에서는 무조건 노점상 출입 안돼"

등에 보따리를 진 성수씨는 거리응원에 나선 시민들에게 야광 헤어밴드를 팔기위해 청계천에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성수씨가 시민들이 앉아있는 청계천 변 응원장 안에 들어서러하자, 응원장 경호를 맡은 건장한 청년 몇이 막아섰다.

“어이 아저씨 나가요, 나가.”
“아, 왜 나도 장사 좀 해서 먹고살게 해줘요.”

“아 글쎄, 잡상인 안된다니까. 나가라고. 나가. 여기가 어디라구.”

경호원들은 이내 근처 가로정비 용역반원들을 불러 성수씨를 응원장 멀리 내쫓으라고 지시했다. 이들 중 한명이 성수씨의 보따리를 내동댕이쳤고 이에 흥분한 성수씨는 “안 팔면 될 것 아냐, 근데 왜 반말이야, 나이도 새까맣게 어린 놈이...”라며 경호업체 직원에게 달려들었다.

5분여간의 짧은 실랑이 후, 끝내 응원장 밖으로 밀려난 성수씨는 기자에게 분이 덜 풀린 듯 “저 폭도같은 x들, 내가 뭐 어쨌다구, 내가 강매해?”라며 하소연했다. 성수씨는 곁에 있던 한 무리의 남자들에게 담배 한 개비를 꾸더니 연신 연기를 내뿜었다.

성수씨는 노점상까지 통제하는 거리응원이 있을 수 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동현 기자


3년간 알콜중독으로 노숙하던 성수씨, 재활의지 갖고 생활전선에 뛰어들다

성수씨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3년가량 노숙자 생활을 했다. 미국에서 6년간 뉴욕주에서 한인식당을 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으나 지난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 내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심해져 운영하던 식당이 어려움을 겪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해 11월, 미국 내 한 방송사에서 미국 내 한인사회에 개고기 암시장이 형성돼 있다는 보도와 함께, 보도 취지와 상관없는 한국의 개 사육장 화면과 맨하튼 32스트리트 한인 타운의 식당가를 비춰줌으로써 미국 내 반한감정을 불러일으킨 ‘개고기 사건’이 터져버렸다.

이후 한인 식당에서 구입해 간 보신탕이 염소고기(또는 양고기)였다는 결과가 밝혀졌음에도 , 이미 미국인들의 머릿속에는 “한국인들은 야만인”이라는 편견이 자리잡은 후 였다. 성수씨가 운영하던 식당을 자주 이용하던 손님들도 발길을 끊었고, 일부 주민들은 성수씨에게 식당문을 닫으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성수씨에게 닥친 불행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듬해 성수씨의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파산직전에 다다른 사업을 접고 국내로 복귀한 성수씨는 끝내 어머니를 잃었다.

이후 파산상태에 달한 성수씨는 국내사정을 잘 몰라 빚보증까지 잘못 서게 돼 결국 거리로 나앉게 됐다. 그렇게 지난 3년간 거리에서 생활한 성수씨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알콜 중독자까지 돼 버렸다.

그러다가 찾은 곳이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한 노숙자 쉼터였다. 서울시의 한 사회복지사가 연결해 준 이 곳 쉼터에서 성수씨는 조금씩 자활에 들어갔다. 때마침 서울시의 노숙자 일자리 제공 프로젝트도 도입돼 성수씨는 일당 4만3천2백50원을 받고, 매일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한강공원 녹지조성 관계 노무일을 하고 있다.

청계천 응원장에서 쫓겨난 이 날도 성수씨는 한강공원에서 일을 마치자마자 부랴부랴 보따리를 짊어지고 이 곳으로 달려왔다.

“조금이라도 돈을 모아볼까 왔어요. 이거 하나에 2천원 밖에 안해. 이거 팔아봤자 얼마나 남겠어. 조금이라도 더 돈을 모아야 쉼터 생활도 접고 자립할 거 아니요? 미국에서도 큰 축제같은 거 있으면 판매상들 눈감아 줘요. 무슨 대통령 행사도 아니고... 휴.”

자발적 거리응원에 '경호원, 사전리허설 등' 인위적 색채 가득

성수씨는 이번 청계천 응원장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응원장 등 서울시청이 컨소시엄에 내준 응원장소에 노점상의 출입 자체를 전면 통제한 사실에 분통을 터뜨렸다.

성수씨는 자신과 같은 노숙자들에게 서울시가 일자리 프로젝트를 제공하는 등 마냥 고마운 존재인 줄 알았지만 자신들처럼 어려운 노점상들에게 이렇게 야박하게 구는 서울시의 이중적 모습을 보고 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오히려 보기 싫은 것들은 일반인들이 안보이는 곳에서 조용히 있으라는 소리가 아닌가 하는 못난 생각도 난다고 그는 푸념했다.

청계천 응원장 경호 책임을 맡은 관계자는 “청계천, 서울광장 등 거리응원장 안에서는 일체의 상거래행위나, 타기업 홍보 등을 못하게 했다”면서 “이는 서울시와 컨소시엄이 합의한 공동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노점상이 들어오면 응원장이 아수라장이 된다”면서 “당연히 거리응원에 방해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현장에서 노점상 단속 목적으로 고용된 한 청년은 “솔직히 저 아저씨의 경우 보따리를 지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크게 지저분할 것도 없고 행사에 큰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그래도 서울시나 위에서 시키는 것이라 우리도 고용된 입장에서 어쩔 수 없다”고 난감해했다.

서울시청 앞을 가득 메운 붉은 악마들. 이들 사이에 노점상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최병성 기자


이 날 시청 앞 서울광장, 청계천 앞, 세종문화회관 앞 등 대기업과 거대언론사 등이 주축이 돼 벌인 거리응원은 말 그대로 ‘거리응원’이라기 보다 특정 장소와 구간을 사전에 설정해 둔 ‘거리공연’에 불과했다는 비판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히 수백명의 경호원과 자리배치, 사전리허설에다, 노점상의 전면 통제까지 실시한 것은 지난 2002년 자발적 거리응원에는 볼 수 없었던 2006년판 신종 거리응원(?)에서나 볼 수 있었던 풍경이었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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