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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일본 통렬하게 반성해야”

<좌담회> 김우창.오에 “시민들이 연대해 아시아평화 만들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서 보이듯 일본 정부는 한국과 중국에 대해, 그리고 식민지주의와 군국주의로 큰 피해를 입었던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대해 올바른 역사인식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은 미래에 대한 전망을 포함해 현재를 바르게 응시하고 책임 있는 행동을 취해야 한다.”(오에 겐자부로)

“민족주의적인 감정이 자극되면, 그것은 사람들을 국가나 민족의 테두리 안에 묶어 넣어 사람을 각각 그 나름의 삶을 사는 개체가 아니라 집단으로 보게해 사려깊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을 방해한다. 삶의 테두리를 동아시아로, 세계로 확대하면서 어떻게 보다 만족할만한 삶을 살 수 있는가에 대해 깊은 지혜를 나눠야 한다.”(김우창)

"양국간 시민연대 구축해 국가간 대립 뛰어넘어야 "

최근 독도 도발과 역사 교과서 왜곡 등 극우 보수행보로 동북아시아 지역갈등을 유발하고 있는 일본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감이 큰 가운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살아있는 지성' 오에 겐자부로(71.大江健三郞)씨와 김우창(69) 고려대 명예교수가 ‘동아시아의 평화비전을 향하여’를 주제로 19일 감동적인 대담을 나눴다.

대담을 하는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와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 김홍국 기자


특히 소설 <성적 인간> <절규> <개인적 체험> <홍수는 나의 영혼에 넘쳐 흘러> <동시대 게임> 등 걸작을 잇달아 발표해 지난 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겐자부로씨는 이날 솔직하면서도 유머 넘치는 화술로 세계적인 지성다운 노작가의 연륜을 내비쳤다.

그는 특히 "아시아인의 연대가 세계평화를 위해서 중요하다"며 “현재 한국어와 중국어를 읽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시아인으로서 한국어와 중국어를 공부하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손자들도 한국에 보내 한국말을 익히도록 하겠다”며 한국에 대한 높은 애정과 관심을 표명했다.

대산문화재단과 교보생명 공동주최로 이날 오후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에서 열린 대담에서 겐자부로씨와 김교수는 “현재의 한국과 일본, 동북아의 갈등과 긴장 양상을 통합적 관점에서 조망해야 하며 대화와 이해를 통해 상생 관계를 구축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양국 간 시민연대를 구축해 국가 간 대립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전날 고려대에서 열린 특별강연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에 대해 “고이즈미 총리는 한국, 중국 등 주변 국가에서 신사 참배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회피한 채 마음의 자유라고 둘러대고 있다. 총리가 왜 마음의 자유라는 표현에 빗대어 잘못된 신사 참배를 미화하는지 모르겠다. 이 표현은 예컨대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충돌해서 인간이 다치거나 죽을 때 종교를 비판하는 자유와 같이 국가, 개인 차원에서 휴머니즘의 실천을 위해 사용하는 숭고한 언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이날도 기조발언과 대담을 통해 현 일본 정부의 문제점과 아시아 국가간의 연대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겐자부로 “일본 범죄에 대해 책임져야”, 김우창 “비정치적 교류 중요”

그는 기조발언을 통해 “우리나라 정부 특히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참배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과 중국, 그리고 우리의 식민지주의와 군국주의에 의해 커다란 피해를 입었던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보이고 있지 않다”면서 “역사를 인식한다는 것은 과거에 대해서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미래에 대한 전망을 포함해서 지금 현재를 바르게 응시하고, 책임있는 행동을 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어머니가 가장 어려운 것을 택하라고 해 불문학을 전공하게 됐다"며 청중에게 웃음을 선사한 오에 겐자부로 ⓒ 김홍국 기자


그는 또 “저는 이제 노년에 접어들어, 앞으로 얼마나 더 문학활동을 할 수 있을지 불안하지만, 지금 자주 생각하는 것은 1910년 한국합병조약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지 1백년이 되는 것이 2010년인데, 일본인이 이러한 1백년의 역사를 제대로 재인식해서 다음 시대를 맞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한국의 시민들과 자주 대화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양국 및 아시아국가 시민들의 대화와 토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우창 교수는 “최근 한·일간의 관계에서 서로 민족주의적 감정을 자극하고 있는 이슈가 바로 독도문제”라며 “민족주의적 감정이 자극되면, 그것은 사람들을 국가나 민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묶어넣어 사람을 각각 그 나름의 삶을 사는 개체가 아니라 한 덩어리의 집단으로서 느끼고 행동하게 하고 그 밖에 있는 다른 집단의 사람들을 또 한 덩어리로 보게 하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분석했다.

김교수는 “그러나 독도 문제에 대한 이즈음 언론의 보도들은 다행스럽게도 일본과 일본인을 뭉뚱그려 하나의 커다란 적대집단으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양국간의 긴장이 있음에도 일본 전체를 사갈시하는, 또는 영어로 ‘데모나이즈(demonize)’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큰 발전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최근 본 통계로는 한·일 두 나라 사이에 오가는 사람들이 일년에 나라당 적어도 1백만명 이상이라고 한다. 서로 만나면 결점도 없지 않지만, 칭찬할 것도 많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절로 알게 되고 공식적인 자세로 굳어진 표면을 지키기가 어려워지게 마련”이라며 국경을 넘어선 비정치적 교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겐자부로 “독도문제, 한일관계 다이너마이트 될 수도”

겐자부로씨는 국가간 신뢰 구축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과학기술자로 배운 것이 많았던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분 말씀이 ‘일본은 앞으로 군비를 하지 않는다.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맹세, 선언하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그럼 평화는 어떻게 유지할 것이냐는 물음에 ‘세계 국민에 대한 신의’가 그 답이라고 하셨다. 그럼 신의는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느냐 했을 때 그것은 미국도, 소련도 아닌 바로 한국, 중국, 필리핀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는 일화를 이야기한 뒤 “이웃에 대해 엄청난 일을 저지른 일본은 이를 어떻게 보상하고 신뢰를 회복할 것인지, 신의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를 중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한일 지성의 대화는 시종 진지함과 유머가 묻어나 청중을 즐겁게 했다. ⓒ 김홍국 기자


그는 현재 일본이 추진중인 헌법 개정과 관련, “9명 발기인으로 출발한 헌법 개정 저지 모임이 현재 4천5백여명에 이르고 있으며 비슷한 단체가 5백여개 있다. 우리가 점점 목소리를 키우는 가운데 분명 강력한 정부도 아니고, 약한 민족도 아닌 제3의 길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제3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이웃나라를 믿고 신의를 믿고 그들과 함께 손잡고 나가자는 방침을 다른 국민, 시민들과 공유할 수 있다면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아시아 시민들의 연대를 주장했다.

그는 “영토 차원에서 독도가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은 거의 없다. 독도 문제를, 민족주의를 불러 일으키는 성냥으로 쓰고 있지만 자칫 다이너마이트가 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지하수처럼 흐르는 것이 진정한 민족주의로 과거 일제 강점기 때 한국인들의 보여준 민족주의는 올바르지만 지금 일본의 민족주의는 분명 잘못됐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1945년 일본이 전쟁에 지면서 아시아에 새로운 평화공존의 가능성이 생겼다. 현대 일본인들이 전쟁에 졌다는 사실을 미래를 위해 계속 가져가려는 의식이 있는가 하는 문제가 현재 일본인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동아시아가 국가들이 편협한 민족주의를 극복해나가지 않으면 동아시아의 미래는 없다. 한국, 중국, 일본 국가들이 서로 대립하고 갈등해도 인터넷 등을 무기로 한 시민 연대가 그런 대립과 반목을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희망이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이 ‘미리미리 나와 다른 사람이 어려운 관계에 부딪히지 않게 행동한다’는 의미의 ‘프루덴셜(prudential)’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또 “미국과 유럽이 '동아시아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을 하는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큰 차원의 동아시아 시민 아이덴티티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내 세대에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가능할 것으로 믿는다”며 “일본에서의 한류바람과, 한국에서의 일본소설 바람이 이런 동아시아적 화해를 돕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한류, 한국에서의 일본소설 붐 등에서 보듯 동아시아에서 문화 공통의 기반이 확대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일본에서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의 중년층에게 '낙담과 소외감'과 같은 동질적 정서를 전달해주고 있고 양국에서 모두 인기가 있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며 대중문화 교류가 동아시아적 가치를 결집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우창 “인간적인 질서 위해 문화적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이에 대해 김우창 교수는 “냉전체제 종식 이후 새 질서를 요구하는 동북아 지역에서의 갈등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이를 인도적, 평화적 방법으로 풀어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질서의 보증자 노릇을 해온 중국의 변화와 냉전체제의 붕괴가 새로운 평화질서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반목,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냉전의 질서가 아니라, 힘이 강해진 동아시아 자체의 질서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는 힘의 균형에 의해 확보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국가간의 질서는 티격태격하면서 어떻게든 만들어지겠으나 인간적인 질서가 되기 위해서는 문화적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우창 교수는 "힘이 강해진 동아시아 자체의 질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 김홍국 기자


김 교수는 오에 겐자부로씨가 제시한 '시민 아이덴티티' 개념에 대해 “시민들이 횡적인 연대를 통한 아시아적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독일과 폴란드의 영토 경계를 보면 그동안 수차례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했고 독일에서도 여러 차례 새로운 경계를 확인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한국과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일본은 충분한 도덕적 판단이 서있지 않은 것 같다”며 “반성이란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잘못했을 때 다시 함께 살아가기 위해 거치는 과정이다. 동아시인들이 서로 더불어 살아갈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면 역사적 사실에 대해 사과할 것은 사과할 텐데 (사과하지 않는 것을 보면) 다른 동아시아 국민이 '더불어 살아갈 사람'이라는 인식이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자기 정부를 '도덕적으로 행동하라'고 비판하고, 이웃 국가와 관계를 올바로 정립하고,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한편 문화적으로 그것을 확대해나가야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 바로 문학인과 지식인들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갈파했다.

오에 겐자부로가 몰려든 팬들에게 정성껏 사인을 해주고 있다. ⓒ 김홍국 기자


오에 겐자부로, 김우창 누구인가

오에 겐자부로는 1935년 일본 시코쿠(四國) 에히메(愛媛)현 출신으로 도쿄대 불문과를 졸업했고 김지하 시인에 대한 한국군사정부의 탄압에 항의하는 단식투쟁에 참가하는 등 일본을 대표하는 참여형 지성으로 꼽힌다.

탁월한 문학적 상상력으로 인간이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불안과 당혹감 등 실존의 문제를 다뤘고 94년 소설 <만원원년의 풋볼(万延元年のフットボ-ル)>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일본어의 자연스러운 리듬을 깨뜨리는 듯한 거칠면서도 단조로운 문체로 일본 전후세대의 반항을 간결하게 묘사한 그는 고도의 세련된 문학적 기교와 개인적 고백을 통한 작가의 진솔함이 높이 평가받아왔다.

그는 1994년 12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행한 '애매한 일본과 나'라는 제목의 노벨 문학상 수상소감 연설에서 “일본이 특히 아시아인들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며 “전쟁 중의 잔학행위를 책임져야 하며 위험스럽고 기괴한 국가의 출현을 막기 위해 평화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세계적인 지성으로 꼽혀왔다.

김우창 교수는 1937년 전남 함평 출신의 문학평론가로 서울대 영문과, 하버드대 대학원(박사)을 졸업했다. 1965년 <신동아>에 ‘존재의 인식과 감수성의 존중>을 발표해 평론활동을 시작한 뒤 이후 시와 미, 정치의 본질과 상호관계를 아우르는 사유의 깊이를 보여줘 ’한국 인문학의 거장‘으로 불려왔다.

<정치와 삶의 세계> <시대의 흐름에 서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 <심미적 이성의 탐구> <시인의 보석> <행동과 사유> 등을 저술했으며 대산문학상, 금호학술상, 서울문화예술평론상, 팔봉비평문학상, 고려대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김홍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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