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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이 무너졌는데 어디로 귀농하겠다는 건가"

[한국의 뉴리더]<2> 임경수의 농촌실험 '퍼머컬처'

주식회사 '이장'의 CEO 임경수는 대학시절 “장래 희망이 뭐냐”는 질문에 “마을 이장이 되고 싶다”고 대답하곤 했다. ‘작지만 아름다운 공동체’ 경영을 꿈꿨던 그는 그래서 ‘이장’이란 별호를 얻게 됐다. 한때 모교인 서울대학교 후문에서 ‘이장네 밥집’이란 작은 식당을 열었던 것도 그의 ‘소망’을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장네 밥집’의 실험은 그러나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강원도 춘천에 ‘이장’이란 회사를 차린 그는 전국 농촌의 이장들과 함께 마을을 다시 설계하고, 일궈 세우는 일을 시작했다. 마을의 부활 프로젝트를 컨설팅하는 ‘농촌 컨설턴트’로 입신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는 서울대 공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공학도다. 대학원에서는 대기오염 문제를 연구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이 처한 이상한 ‘존재론적 현실’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게 됐다. 전공을 살려 환경문제를 공학적으로 해결하는 사람이 되면 환경문제가 많이 생겨야 밥 벌어먹고 살게 되는 ‘이상한 꼴’이 된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는 이같은 존재의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이, 그리고 환경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농업에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박사과정은 유기농업을 선택했다.

“농민들을 꾸준히 접촉한 결과,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기농업 기술만 가지고는 농업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호주에 가서 생태마을을 공부했습니다. 농사짓는 방법만이 문제가 아니라 농촌의 구조, 농업의 뼈대를 바꾸는 일이 문제를 해결하는 근원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는 2개의 명함을 소지하게 됐다. 생태농촌을 실현하는 ‘주식회사 이장’의 CEO 명함이 그 하나다. 이 명함에 의거한 그의 사업 분야는 생태농장, 생태서적 출판, 생태환경 조사다.

또 한 장의 명함은 한국파머컬처연구소 소장 임경수다. ‘농촌 문화 전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그의 현주소를 말해 주고 있는 명함이다. 현재 그는 ‘이장’의 본사가 있는 안성, 지사가 있는 서울, 현재 그가 거주하고 있는 충남 서천군 군사1리 등 세 곳을 그의 동선으로 삼고 있다.

그가 아무런 연고가 없는 충남 서천에 터를 잡은 것은 3년 전이다. 서천군의 농업공동체를 혁신하려는 군 공무원들의 열의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곳에서 서천군이 추진하는 농촌 개발 사업에 전반적인 컨설팅을 제공하며, 판교면 등고리 약 9천여 평의 부지에 생태 공동체 ‘산너울’ 마을을 조성하고 있다.

물론 서천 외에도 도시인을 겨냥해 은퇴자 마을이나 전원마을을 조성하는 지방자치단체는 많이 있다. 농림부는 오는 2013년까지 전국에 전원 마을 3백 개를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산너울 마을은 그 개념과 성격이 여느 귀농마을과 다르다.

자치단체 예산 10억여 원을 들여 조성하는 산너울 마을은 계획 단계부터 입주자가 참여하는 생태·공동체 마을로 건설되고 있다. 전원생활을 하고 싶은 도시인 외에 △생태·공동체 마을을 조성하는 데 동의하는 사람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찾고 또 하려는 사람을 입주 대상자로 지목한 점이 흥미롭다. 입주민이 원할 경우 지역사회에서 소득사업 및 일자리를 찾아 연결시키는 서비스도 진행하고 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화분에 콩을 심어 놓고 하루 종일 화분을 들여다본 기억이 있습니다. 학교에 갈 때도 일부러 포장이 안 된 길을 걸어다니기도 했어요. 보이스카우트 시절에는 장차 자연 상태에서 분해되는 비닐봉투를 만들겠다고 다짐한 적도 있습니다.”

물론 썩는 비닐을 발명한다고 해서 환경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대학원에 다니며 환경문제를 공부하면서부터 근본적인 변화, 총체적인 문제 해결의 밑그림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독일 철학자 루돌프 슈타이너의 생각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이 굉장히 많다는 생각에서 출발, 처음에 교육이론을 만들고 대안학교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농업이라 주장했지요. 모든 생명이 전 우주와 연결돼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알고 있으므로 농사도 그런 관점에서 지어야 한다고 말했지요. 바로 이거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임 씨가 생각하는 진정한 농업이란 이처럼 ‘유기적인 관계’에 바탕을 둔 유기농업이다. 흙과 작물의 관계, 작물과 농부의 관계, 농부와 도시 소비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유기적 관계에 착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약을 안 치는 것만을 유기농이라고 생각하는 건 단견이라고 봐요. 예를 들어 한 귀농인이 농사를 지었는데, 농약을 치면 고추가 살고, 안 치면 고추가 죽어 귀농생활을 접어야 한다면 문제가 되죠. 일단 농약을 치는 것을 소비자가 인정해 주고, 다음해에 좀 더 나은 유기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관계, 이런 것이 진정한 유기농업이죠. 좀 더 큰 틀에서, 관계를 중시하는 관점에서 유기농을 서서히 발전시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임경수 주식회사 '이장' 대표 ⓒ한기홍


임 씨가 바라보는 농촌의 실상은 참담하다. 절대적인 가난을 물리쳤지만 그 참담함은 또 다른 구조 속에서 생성된 것이다. 농민들은 장터 아닌 대형마트에 가서 호미 등 농기구를 산다. 지역경제의 자족적 사이클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초등학교가 없는 읍·면도 숱한 상황에서 농민은 물론 귀농·귀촌자도 미래가 없다는 것이 임 씨의 생각이다.

“이미 지역이 무너졌기 때문에 귀촌인이 돌아갈 유인이 없습니다. 이를 막으려면 다양한 귀농·귀촌자가 결합한 마을들이 출현해 지역공동체 복원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지역의 인재들이 도시로 다 빠져나갔다는 것이지요. 농촌 문제를 논할 때 되풀이되는 이야기이지만 노인들만 사는 농촌에서 혁신과 향상은 기대할 수가 없어요.”

그가 이상적인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는 개념은 ‘퍼머컬처’다. 지속가능한 주거환경을 창조하기 위한 계획과 설계를 의미한다. 퍼머컬처라는 용어 자체는 영구적(permanent)이라는 말과 농업(agriculture, 혹은 문화 culture)이라는 말의 합성어이다.

“빌 모리슨이라는 사람이 주창한 아이디어죠. 1974년 호주에서 시작돼 호평을 받으며 전 세계적으로 퍼졌습니다. 1990년대 빌 모리슨이 충남 홍성의 풀무학교를 방문하면서부터 한국에서도 관심이 일기 시작했지요.”

이 운동은 서울대 김귀곤 교수에 의해 학술적으로 소개된 뒤 환경운동가나 농촌연구가들 사이에서 `농촌 살리기'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현재 이 운동의 선구자가 바로 이장의 CEO 임경수 씨다.

임 씨가 운영하는 한국퍼머컬처는 2006년까지 제5기 강좌를 마쳤다. 초기에는 호주에서 온 강사들을 배치했으나 우리 실정에 맞는 교육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새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고 1년에 두 번씩, 한 번에 7박8일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임 씨가 운영하는 주식회사 이장은 하나의 사회기업으로 성장했다. 임씨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이장은 수지 측면에서도 적자를 넘어서는 작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기업은 자본을 축적하는 ‘괴물’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자아를 실현하는 ‘아름다운 도구’다.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의 시대는 사라지고 있다고 봅니다. 자기실현을 위한 도구로 기업을 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죠. 기업을 자기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오염된 환경을 복원하는 일, 공동체를 통해 생태운동을 벌이는 일, 자연으로 복귀하여 삶의 질을 향상하는 일은 학자나 환경운동가의 몫만은 아닙니다. 사회적 기업은 당장은 난센스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결국은 그 영역을 엄청나게 큰 스케일로 확장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장이 시도하는 자기실현 시스템은 철저한 팀별 독립채산제다. 회사의 각 팀은 인사와 회계 등을 철저하게 독립적으로 운영한다. 신입사원을 뽑을 때도 그는 간여하지 않는다. 각 팀이 사람을 뽑으면 CEO에게 그 사실을 ‘통보’할 뿐이다. 회사 내 건축팀과 연구소는 이미 자체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자신들의 급여를 벌고 있다. 최근에는 본사를 춘천에서 안성으로 옮기고 독립채산제 시스템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물론 각 팀은 본사를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금을 내지요. 그러나 일 속에서 구성원들이 재미를 느껴야 하고 그 일을 통해 가족의 생계를 꾸려갈 급여를 만들어야 합니다. 건강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일에 보람을 느끼고, 그 일로 가족의 생계와 함께 사회에도 공헌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죠.”

그는 지금 거주하고 있는 서천 지역이 지속 가능한 지역개발의 모델 지역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가 서천에 정착해 가장 절실하게 느낀 것은 지역주민이 지역발전을 위해 모이고 토론할 공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조합원이 출자해서 차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는 마을카페의 설립을 기획했다.

“마을카페를 만드는 일도 쉽지 않았어요. 구성원들이 조합운동의 경험이 일천했기 때문에 카페의 운영도 곤란한 상황을 맞게 됐죠. 출자한 만큼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카페운영 전체에 개입하려고 해요. 책임지고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이 배겨날 수가 없지요. 최근에야 이런 문제들이 해결됐지만 농촌의 공동체 작업은 오랜 기간의 타성 때문에 험난하기만 합니다.”

그는 북한 농업의 피폐상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결국 통합될 남북의 농업공동체가 같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는 1999년과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북한 농업을 시찰하기도 했다.

“농업부문을 주로 보고 왔는데, 지금 우리가 지원하는 방식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자생적인 농업기술을 시도하고 개발하고 있는데, 오히려 남쪽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것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 방향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남한의 전철을 밟게 하고 있는 겁니다. 남북한 공동으로 지속 가능한 방법을 개발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의 자생적 농업기술의 장점을 폐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잘 살릴 수 있는 길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농촌의 당면한 현실을 체인 리액션(연쇄효과)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 군 단위 자족적 자본순환형 경제구조를 만들어서 신자유주의의 엄혹한 체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춘천에서 처음 이장을 시작할 때 이런 문제의식에 매달렸다.

-닭갈비 무지하게 소비하는 춘천에 왜 닭가공 공장이 하나도 없는가?
-시내 닭갈비집에서 왜 외지 닭을 유입해서 가공하여 파는가?

그가 내놓은 해결책은 닭갈비집 연합체의 건설이었다. 가공공장과 사육농가가 네트워크를 형성, 서비스 질을 높이고 가격을 줄이는 방향으로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닭갈비집 연합체의 공동구매 기능을 살려서 지역 내 생산품을 소비하도록 방향을 전환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서천에서 군수에게 컨설팅하는 것도 이같은 자족적 경제공동체의 구성이다.

“서천은 농업생산의 70% 이상이 쌀로 이뤄집니다. 벼를 중심으로 한 문화적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은 단순한 유기농법이나 증산 같은 프로그램으론 안 됩니다. 나머지 대체작물 농업과 원예농업, 서천의 명주 소곡주를 유기적으로 묶는 농업경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역의 경제가 재생산구조를 확보해 도시로의 부의 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죠. 도시만 바라보고 사는 농촌공동체의 운명은 반드시 극복돼야 합니다.”

임경수는 1966년 서울 생. 서울대 공과대학 공업화학과를 나와 같은 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 취득. 호주 생태마을 퍼머컬처 디자인코스 수료. 경원대 생태공학 강사를 거쳐 풀무농업기술고등학교 전공부 환경농업과 겸임교수로 있다. 농림부 마을종합개발사업 자문위원 등 사회활동을 활발히 펴고 있다. 서울대학교 후문에서 ‘이장네 밥집’을 열었다가 실패, 안성에 본사를 둔 주식회사 ‘이장’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필자 소개

한기홍

1961년 생. 고려대 영문학과. 중앙일보 <월간중앙>, 경향신문 <뉴스메이커> 기자. 현 <월간중앙> 객원기자, <뉴스메이커> 편집위원. 여러 매체와 단행본 작업을 통해 다양한 소재의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최근에 술과 담배를 끊었다.
한기홍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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