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교수, 이번엔 <아리랑> 비난 파문
식민사관에 기초 "<아리랑>, 광기로 가득찬 역사왜곡소설"
'식민사관'에 기초해 일제 강점시대를 미화하는 주장을 펴와 여러 차례 물의를 빚은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56)가 이번엔 소설가 조정래씨의 역사대하소설 <아리랑>를 비난하는 글을 발표, 파문이 일고 있다.
이영훈 "<아리랑>은 광기로 가득 찬 역사왜곡 소설"
뉴라이트전국연합 지도위원인 이 교수는 뉴라이트재단과 헤럴드미디어가 공동발행하는 계간 <시대정신> 여름호에 기고한 글을 통해 1904년 러일전쟁 이후 1945년 해방 때까지 일제식민치하에서 조선 민중이 겪은 고난과 수난의 역사를 다룬 12권짜리 대하소설 <아리랑>을 "일종의 광기, 학살의 광기와 거꾸로 통하는 광기"로 가득 찬 소설이라고 비난했다.
이 교수는 글에서 "일제하 식민지기는 수탈과 학살로 가득 찬, 분노와 증오로만 설명될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다. 수난과 모멸의 시대였지만, 새로운 학습과 성취의 시대이기도 하였다"며 자신의 지론인 '식민지 근대화'론을 편 뒤, "식민지기의 민족사적 내지 세계사적 의의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나는 앞으로 누군가 새로운 역사소설가가 나와서 식민지기의 수탈과 개발을 상징하는 김제와 군산의 역사를 성찰의 역사소설로 다시 써 주길 고대해 마지 않는다"며 종전의 식민사관을 되풀이했다.
이 교수는 이어 <아리랑>의 경우 역사적 사실조차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나는 일개 소설가가 이런 엄청난 허구의 사실을 그렇게도 당당히 역사적 사실로 소리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예컨대 <아리랑>은 토지조사사업 과정에서 지주를 크게 다치게 한 차갑수라는 농민을 김제경찰서 죽산주재소장이 마을 당산나무에 결박하고는 '조선경찰령'에 따라 즉결 총살됐으며 토지조사사업기간에 그런 즉결처형사례가 4천여건에 이른다고 되어 있으나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으며, 나아가 그런 법령조차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아리랑>의 경우 평화롭던 김제평야가 러일전쟁 이후에 야금야금 일본인 지주 손에 들어갔다고 묘사하고 이전에 전라북도 관찰사로 재직한 이완용이 김제만경평야를 일본에 팔아먹었다고 했으나, 김제만경평야는 19세기까지만 해도 수리시설이 전혀 없는 갈대 무성한 황무지였을 뿐이고, 이곳이 곡창지대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10년 이후로 이 평야를 일본인에게 빼앗긴 것이 아니라, 일본인이 이를 곡창지대로 개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일본인들이 개발한 땅인만큼 착취 운운은 말이 안된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따라서 농지를 빼앗긴 조선농민들이 고향을 떠나 만주로 내몰렸다는 <아리랑> 주장은 사실과 다르며, 오히려 수리조합결성을 통해 김제만경평야가 개발됨에 따라 조선농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런 근거에 기초해 <아리랑>을 악의적 역사왜곡 소설로 규정했다.
뉴라이트진영인 이 교수의 이같은 조정래 비판은 리영희, 송건호 등에 대한 뉴라이트 진영의 비난공세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어서 앞으로 조정래씨 등의 반격이 주목된다.
종군위안부-역사교과서 왜곡 등으로 계속 물의
이 교수는 앞서 지난해 11월 뉴라이트 계열인 '교과서포럼'의 필진 중 한명으로 참가해 4.19혁명을 '학생운동'으로 비하하고, 5.16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유신체제를 '국가의 자원동원과 집행능력을 크게 제고하는 체제'라고 미화해 진보진영은 물론 보수진영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등 큰 물의를 일으키자, 그후 4.19단체 등에게 공개 사과한 바 있다.
이 교수는 앞서 2004년 9월2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 "정신대는 자발적 참여"라고 주장해 커다란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그는 당시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이 조선총독부의 정신대 강제징발을 지적하자 "누가 주장했나. 어느 학자가 주장한 것이냐"며 "정신대 보고서를 안 읽어보고 하는 말이다"고 반발했다. 이 교수는 "정신대 관련 일본 자료를 보면 (정신대) 범죄행위는 권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고 참여하는 많은 민간인들이 있었다"며 "한국 여성들을 관리한 것은 한국업소 주인들이고 그 명단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의 주장은 "정신대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동원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한 상업적 매춘"이라는 일본 극우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어서 큰 논란이 일었고, 결국 이 교수는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이 사는 '나눔의 집'을 방문해 공개사과하기도 했다.
평소 '실증적 접근'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 교수는 한국 '식민지 근대화론'의 대부격인 안병직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의 추천으로 서울대 교수가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파문 당시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들 사이에서는 "이 교수가 워낙 일본 자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일본의 식민지 근대화론에 경도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었다.
이영훈 "<아리랑>은 광기로 가득 찬 역사왜곡 소설"
뉴라이트전국연합 지도위원인 이 교수는 뉴라이트재단과 헤럴드미디어가 공동발행하는 계간 <시대정신> 여름호에 기고한 글을 통해 1904년 러일전쟁 이후 1945년 해방 때까지 일제식민치하에서 조선 민중이 겪은 고난과 수난의 역사를 다룬 12권짜리 대하소설 <아리랑>을 "일종의 광기, 학살의 광기와 거꾸로 통하는 광기"로 가득 찬 소설이라고 비난했다.
이 교수는 글에서 "일제하 식민지기는 수탈과 학살로 가득 찬, 분노와 증오로만 설명될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다. 수난과 모멸의 시대였지만, 새로운 학습과 성취의 시대이기도 하였다"며 자신의 지론인 '식민지 근대화'론을 편 뒤, "식민지기의 민족사적 내지 세계사적 의의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나는 앞으로 누군가 새로운 역사소설가가 나와서 식민지기의 수탈과 개발을 상징하는 김제와 군산의 역사를 성찰의 역사소설로 다시 써 주길 고대해 마지 않는다"며 종전의 식민사관을 되풀이했다.
이 교수는 이어 <아리랑>의 경우 역사적 사실조차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나는 일개 소설가가 이런 엄청난 허구의 사실을 그렇게도 당당히 역사적 사실로 소리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예컨대 <아리랑>은 토지조사사업 과정에서 지주를 크게 다치게 한 차갑수라는 농민을 김제경찰서 죽산주재소장이 마을 당산나무에 결박하고는 '조선경찰령'에 따라 즉결 총살됐으며 토지조사사업기간에 그런 즉결처형사례가 4천여건에 이른다고 되어 있으나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으며, 나아가 그런 법령조차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아리랑>의 경우 평화롭던 김제평야가 러일전쟁 이후에 야금야금 일본인 지주 손에 들어갔다고 묘사하고 이전에 전라북도 관찰사로 재직한 이완용이 김제만경평야를 일본에 팔아먹었다고 했으나, 김제만경평야는 19세기까지만 해도 수리시설이 전혀 없는 갈대 무성한 황무지였을 뿐이고, 이곳이 곡창지대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10년 이후로 이 평야를 일본인에게 빼앗긴 것이 아니라, 일본인이 이를 곡창지대로 개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일본인들이 개발한 땅인만큼 착취 운운은 말이 안된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따라서 농지를 빼앗긴 조선농민들이 고향을 떠나 만주로 내몰렸다는 <아리랑> 주장은 사실과 다르며, 오히려 수리조합결성을 통해 김제만경평야가 개발됨에 따라 조선농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런 근거에 기초해 <아리랑>을 악의적 역사왜곡 소설로 규정했다.
뉴라이트진영인 이 교수의 이같은 조정래 비판은 리영희, 송건호 등에 대한 뉴라이트 진영의 비난공세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어서 앞으로 조정래씨 등의 반격이 주목된다.
종군위안부-역사교과서 왜곡 등으로 계속 물의
이 교수는 앞서 지난해 11월 뉴라이트 계열인 '교과서포럼'의 필진 중 한명으로 참가해 4.19혁명을 '학생운동'으로 비하하고, 5.16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유신체제를 '국가의 자원동원과 집행능력을 크게 제고하는 체제'라고 미화해 진보진영은 물론 보수진영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등 큰 물의를 일으키자, 그후 4.19단체 등에게 공개 사과한 바 있다.
이 교수는 앞서 2004년 9월2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 "정신대는 자발적 참여"라고 주장해 커다란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그는 당시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이 조선총독부의 정신대 강제징발을 지적하자 "누가 주장했나. 어느 학자가 주장한 것이냐"며 "정신대 보고서를 안 읽어보고 하는 말이다"고 반발했다. 이 교수는 "정신대 관련 일본 자료를 보면 (정신대) 범죄행위는 권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고 참여하는 많은 민간인들이 있었다"며 "한국 여성들을 관리한 것은 한국업소 주인들이고 그 명단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의 주장은 "정신대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동원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한 상업적 매춘"이라는 일본 극우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어서 큰 논란이 일었고, 결국 이 교수는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이 사는 '나눔의 집'을 방문해 공개사과하기도 했다.
평소 '실증적 접근'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 교수는 한국 '식민지 근대화론'의 대부격인 안병직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의 추천으로 서울대 교수가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파문 당시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들 사이에서는 "이 교수가 워낙 일본 자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일본의 식민지 근대화론에 경도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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