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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무너져야"에 불교계 규탄대회, 이명박에 불똥도

<현장> PK-불교수호대법회, 8천여명 모여 개신교 극언 성토

지난 해 6월 개신교 청년단체가 ‘어게인 1907 인 부산’ 집회에서 “사찰이 무너지게 하소서”라는 망언을 한 데 분개한 불교계가 23일 오후 부산 KBS홀에서 공개리에 규탄집회를 열어 '불교 수호'를 다짐했다.

사회자 “ ‘동영상 유포' 책임 묻는 이명박에 어이없어”

주최측인 ‘불교교권수호협의회’(상임대표 정각)는 스님 5백여명과 5천여명의 불자들의 참석을 예상했지만, 막상 대법회가 열린 KBS홀에는 행사 1시간 전부터 불자들의 발길이 이어져 총 8천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행사장을 찾았다. 급기야 대법회가 진행되는 KBS홀에 미처 들어가지 못한 2천여명의 불자들이 바깥 복도와 행사장으로 통하는 입구마다 진을 치며 대형 TV화면을 통해 기도를 올리기에 이르렀다.

문제의 개신교 집회가 ‘가야 불교’의 발원지로 전국 불교계의 근간인 부산에서 열렸다는 점과, 해당 집회에서 '범어사', '삼광사' 등 부산-경남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명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며 “무너지라”고 저주한 데 대한 불자들의 분노 표출인 셈.

이 날 대법회 도중 ‘정치지도자들의 종교적 편향성’ 사례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2004년 '서울 봉헌' 발언이 또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김동현 기자


주최측은 사전에 예고한 대로 이 날 대법회에서 ‘이명박’ 이라는 고유명사를 단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불교훼손을 규탄하며 정법수호라는 대법회의 명분이 자칫 정치적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부산-경남의 주요 사찰 주지승들도 일부 개신교들의 망동을 꾸짖으며 불교의 단합을 강조했을 뿐, 직접적인 정치 인사들을 거명하지 않았다.

'참회진언기도'와 '살풀이'로 막을 올린 이 날 대법회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이름이 거명된 것은 ‘정치지도자들의 종교적 편향성’ 사례라는 영상물에서 단 한번 뿐이었다. 그것도 자막으로 소개됐을 뿐이다. 주최측은 이 전 시장의 2004년 ‘서울 봉헌’ 발언과 지난해 6월 문제의 부산 벡스코 개신교 집회 때 이 전 시장이 직접 영상 축사를 보냈다는 사실을 자막 위로 펼쳐보였다.

그러나 이 날 사회를 맡은 대한불교청년회 부산지구 소속 불자인 대전교통방송 김성필 아나운서는 “지금 이 자리에도 ‘서울시를 봉헌하겠다’는 그 양반 측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이 전 서울시장을 직접 거론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제의 벡스코 ‘어게인 1907 인 부산’ 동영상이 이 전 시장의 축사와 함께 대한불교청년회 홈페이지에 게재된 것을 두고 그쪽(이명박 전 시장측)에서 우리 대불청 부산지구쪽에 ‘명예훼손은 1천만원 이하 벌금이나 3년이하 징역에 처해 질 수 있다’는 동영상 삭제 내용증명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지금 이 곳에 그 양반 사람들이 있다면 그 양반에게 내 말을 똑똑히 전하라”며 “교도소에는 콩밥이라는 영양식을 준다는데 ‘차라리 영양식을 먹고 싶다고, 꼭 가보고 싶다고...’ 이 말을 좀 전하라”고 말했다. 그는 더 나아가 “우리가 그 동영상을 찍었나? 우리가 조작이라도 했나?”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는 이 전 시장을 겨냥 "가까운 미래에 서울을 (하느님께) 갖다받치고, 부산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대한민국 전체를 포교해서, 우리는 토굴에 들어가 몰래 법회를 하러 들어가야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비꼬았다.

대법회에서 직접적으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이름이 거명된 것은 자막을 통한 단 한 차례에 불과했지만 일반 불자들의 이 전 시장에 대한 반감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김동현 기자


일부 일반신자들은 더 격앙

이 날 대법회에 참석한 일부 일반 불자들의 이 전 시장에 대한 반감은 더 컸다.

행사 도중 만난 김선희(가명. 47세)씨는 “우리가 와(왜) 이 팽일(평일) 날에 경남 이서 저서(이 곳 저 곳에서) 왔것습니꺼?”라며 “우리 심정을 불자가 아닌 사람들은 잘 모르낍니다(모를거다)”라고 격앙된 반응을 숨기지 않았다. 김 씨 곁에 있던 중년의 여성 불자는 아예 “이맹박(이명박) 씨를 타도하자는 거지, 전적으로 이 문제는 이 시장이 책임져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기자가 ‘이 전 시장측은 개신교 행사 내용도 몰랐고 사전에 녹화된 축사만 보낸 것이 아니냐’고 되묻자 김 씨는 “그게 변명이라는 깁니다(겁니다). 정치인이라면 책임을 지야 할 것 아입니꺼? 도의적 책임 말입니다. 정치인 중에서도 최고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고서도 추잡하게 변명만 하고... 내는 그게 더 싫습디다”라고 말했다.

먼발치에서 이들과 기자와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윤성희(가명. 52세) 씨는 “도의적 책임 뿌이가(뿐인가)? 지가 뭔데 거따다 축사를 보내고 난린데? 지가 교회 장로라데. 목사도 아이고 신부도 아닌 지가 뭔 대단한 자격이라꼬 개신교 집회에 축사를 다 보내노? 나는 거기 더 이해안가더라”고 거들었다. 그는 이어 “선거도 있제, 표도 좀 봐야하제, 그래서 축사를 보낸 거 아이가”라며 “결국 지 좋을 때는 축사 보내고 지가 곤란해진깨로 이제와서 ‘내는 몰랐다’ 이카는 거 아이겠나? 지도 내용도 몰랐던 집회에 와 축사는 보냈는데... 참 어이가 없다”라고 격분했다.

부산-경남 불교계는 앞으로 불교 수호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다는 계획을 밝혔다. ⓒ김동현 기자


“‘서울시 봉헌’ 한다 할 때부터 알아봤다”

현장에서 만난 이주희(가명. 37세) 씨는 “지금 우리하고 저쪽(개신교)하고 싸움 붙이는 것 같다”며 이 전 시장 책임론을 주장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아무리 자기 종교가 투철해도 지도자가 되겠다면 종교간 화합, 국민간 화합을 위해서라도 특정 종교 행사 참석이나 발언 등을 자제해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오히려 나서서 문제있는 발언을 하고 행사에 주구장창 참가하니 가만 있던 종교까지도 이 생난리를 피우는 게 아니냐”고 이 전 시장을 비판했다.

그는 “설령 대통령으로 불자님이 나오신다해도 국민 통합을 위해서는 사찰 방문도 일부러 자제해야 하는 것이 이치”라며 “허구한 날 노무현 대통령이 나라를 둘로 쪼개났다고 비난을 받는데 이명박 씨가 대통령 되면 이번에는 종교 문제로 나라가 반으로 쪼개지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박상희(가명. 49세) 씨는 “이명박 씨가 서울시를 하느님께 봉헌한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긴데”라며 이번 ‘영상 축사’ 사건으로 완전히 이 전 시장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고 말했다.

“이명박이 한나라당 아닌 한나라당 할애비라도 안된다”

3시간여의 대법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불자들도 곳곳에서 “아까 그 동영상 봤제(봤지)? 그게 사람 XX들이가? 그런데 거다(거기에다)가 축사를 보내? 미친 거 아이가?”라며 이 전 시장에 대한 성토가 끊이지 않았다.

행사 직후 만난 한 불자는 “부산-경남에서는 이번 사건 벌어지고 말도 못합니더. 이명박씨 완전 싫어합니다. 아마 이 분위기를 그 사람은 잘 알지도 못할 낍니다”라고 부산-경남 지역 불교계의 정서를 대변했다. 그는 “솔직히 부산 하면 한나라당, 한나라당 하면 부산 아입니꺼? 그런데 이명박 씨는 이제 한나라당 아니라 한나라당 할애비 간판 달고 나와도 불자들에게는 안될 낍니다”라며 “진짜 우리 불자들은 진짜 싫어합니다”라고 주장했다.

행사장 바깥에서 만난 한 스님은 “솔직히 큰 스님들이나 저희나 말씀을 많이 아끼고 있다”면서도 “불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스님들입니다”라고 말해 스님들의 분위기도 불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시사했다. 그는 “불교가 원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렇게 접근하는 종교가 아니잖는가”라며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스님들과 불자들이 이 곳까지 나오게 된 것을 잘 생각해보라”고 일침했다.

행사장에 미쳐 들어가지 못한 2천여명의 불자들은 바깥 복도에 설치된 대형 화면을 통해 이 날 대법회를 지켜보며 합장했다. ⓒ김동현 기자


“자비라는 이름으로 벙어리 불자 돼서는 안돼”

한편 이 날 대법회에서 부산-경남 지역 주요 사찰의 주지를 맡고있는 큰스님들은 한결같이 일부 개신교의 극언을 규탄하면서도 직접적인 대응은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향후 '불교 훼손' 행위와 종교 편중 문제에는 조직적으로 대응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불교교권수호협의회’ 상임대표를 맡고있는 미룡사 주지 정각스님은 “국가가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서로 화합해 종교전체의 발전과 사회전체의 발전을 도모해도 부족한 상황에서, 타종교를 부정하고 사회를 혼란속으로 몰아넣고, 급기야 종교의 자유라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이들을 보고만 있을 수 는 없었다”며 이번 대법회를 연 배경을 설명했다. 정각 스님은 “한편으로 이런 법회를 가져야 하는 이 자체가 너무 답답하다”고 개탄했다.

범어사 주지 대성 스님은 “임진왜란 때 모두 타 버린 범어사를 우리의 조상들이 피땀을 흘려서 오늘의 이 사찰을 복원한 것인데 그걸 무너뜨리자는 이야기냐”면서 “사찰은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유산이 아니고 무엇이겠냐”고 일부 개신교를 질타했다.

대성 스님은 “이제 우리도 살아숨쉬는 힘을 보일 때가 됐다”면서 “그러나 젊은 불자들을 중심으로 혈기만을 쓰면 얻는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 자비의 이름으로 모든 울분을 수호라는 이름으로 삼키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통도사 주지 산옹 스님은 “침묵만이 최선의 길은 아니다”라고 직언을 했다.

산옹 스님은 “자비라는 이름으로 벙어리 불자가 돼서는 안된다”며 “불의를 보았을 때 잘못을 꾸짖는 것이 정법의 자세”라고 일갈했다. 삼광사 주지 영제 스님 역시 “단순하고 무지한 2분법적 잣대는 그들이 살아있는 종교가 아닌 죽은 종교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며 일부 개신교의 행태에 혀를 찼다.

정각 스님은 “각 지역과 연대해 전국적으로 불교수호 의지를 펼쳐 나갈 것”이라며 앞으로의 불교계의 행보를 예고했다.

이들은 이 날 대법회 직후 "불교를 비방하고 종교평화를 방해하는 세력들에게 강력히 대응한다", "한국 불교의 중흥을 위하여 비상한 각오로 결의로써 분연히 일어선다"는 등의 결의문을 발표했다.
부산=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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