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 "단일화하고도 질 수 있다는 말 실감케 해"
[전문] "文-安 만나 상대방이 이길 수 있음 인정하라"
백 교수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두 진영의 단일화규칙 협상이 잠정 중단됨으로써 새누리당의 집권연장을 반대하는 대다수 국민들은 큰 실망과 걱정을 안게 되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백 교수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후보 모두에게 호된 쓴소리를 했다.
그는 우선 문 후보에 대해선 "자신들이 내세우는 ‘통큰 맏형’ 전략이 상대방에 어떻게 비칠 수 있는지를 헤아릴 필요가 있다"며 "정말로 통큰 맏형이란 ‘아우가 정녕 나서야겠다면 어디 네가 한번 해봐라’고 물러설 줄도 아는 형님을 말한다. ‘자자분한 요구는 다 들어줄 테니 큰 자리만은 내게 양보해라’는 것이라면 ‘통큰 형님 전략’은 그야말로 동생을 압박하는 전략이요 전술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만에 하나 안후보로 단일화되었을 때 어떻게 협력할지에 대한 고민과 준비는 더욱 없는 것 같다"며 "한동안은 경선에 지면 당이 파멸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차 있다가, 문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지금은 당 지지자들 사이에 그런 공포감을 유발해서 승기를 잡으려는 기미마저 보인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는 안 후보에 대해서도 "안캠프나 안후보의 열성 지지자가 아닌 타인의 관점에서 자신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며 "문캠프 일각에서 흘러나왔다는 ‘양보론’ 등에 분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에 대한 반발이 어디까지가 정곡을 찌른 정치적 대응이고 어디서부터가 현실정치에 단련이 덜 된 신인의 과잉반응일지를 반대쪽의 눈으로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안 후보측이 여론조사 조작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서도 "지지율의 변화가 반드시 여론조사기관의 편향성이나 민주당측의 불공정 행위 때문이기만 했을까요?"라고 반문한 뒤, "예컨대 대중의 높은 기대에 비해 정작 대통령선거를 치러낼 준비는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당연한 우려들을 불식할 만한 모습을 과연 보여주었는지 스스로 물어볼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안철수의 생각>에 좋은 생각이 많다는 이야기를 저는 글로 쓴 일도 있고 <안철수의 약속>에 좋은 약속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만, ‘아, 안철수가 나오니 과연 다르긴 다르구나’라고 다수 국민과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로조차 경탄할 만큼 눈에 확 뜨이는 무엇이 있었던지 자문해봐야 한다"며 "또한 정치쇄신이라는 시대적 화두를 내걸면서도, 각론에 들어갔을 때 중립적인 인사들의 눈에조차 정치적 아마추어리즘으로 얕보일 빌미가 없었는지도 헤아려볼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결론적으로 "아무튼 단일화규칙 협상이 필요하다면 채널을 바꿔서라도 곧 재개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저 개인으로서 그보다 더욱 절실하게 희망하는 것은 두 후보께서 가까운 장래에 다시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는 일"이라며 "당장에 단일화나 단일화규칙을 놓고 담판하기보다 역지사지의 정신을 공유하고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며 양자 직접회동을 조언했다.
그는 "단일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지사지는 뭐니뭐니 해도 상대방이 이길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고, 아울러 자기가 이겼을 때 상대가 어떤 처지에 놓일지를 상상하고 배려하는 마음가짐"이라며 "그러므로 저는 두분이 만나신다면, 내가 이겼을 경우 나는 어떠어떠한 약점과 허점이 있으니 당신이 그것을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보완해달라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당신이 이길 경우 나는 어떤 식으로 도울 수 있고 돕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갔으면 좋겠다. 그것만 된다면 나머지는 쉽게 풀리지 않을까요?"라며 진정성 있는 대화를 호소했다.
다음은 백 교수의 글 전문.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기
한문 문자로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하지요. 어떤 일을 당해서 자기 입장만 고집하지 말고 상대방의 처지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희망2013•승리2012 원탁회의’도 지난달 성명에서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 진영에 대해 이 ‘역지사지의 정신’을 주문한 바 있습니다.
어제 14일 두 진영의 단일화규칙 협상이 잠정 중단됨으로써 새누리당의 집권연장을 반대하는 대다수 국민들은 큰 실망과 걱정을 안게 되었습니다. 대화중단 사태가 협상의 결렬로 이어지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만, 단일화를 하고도 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한층 실감케 해준 사태입니다. 서로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서 새롭게 출발할 필요성이 절실합니다.
먼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진영으로 말한다면 자신들이 내세우는 ‘통큰 맏형’ 전략이 상대방에 어떻게 비칠 수 있는지를 헤아릴 필요가 있습니다. 후보 자신은 맏형의 심성과 자세를 지녔더라도 캠프나 당내에서 벌어지는 낡은 정치의 행태를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다면 상대방의 불신을 사는 것도 불가피하겠지요. 게다가 정말로 통큰 맏형이란 ‘아우가 정녕 나서야겠다면 어디 네가 한번 해봐라’고 물러설 줄도 아는 형님을 말합니다. ‘자자분한 요구는 다 들어줄 테니 큰 자리만은 내게 양보해라’는 것이라면 ‘통큰 형님 전략’은 그야말로 동생을 압박하는 전략이요 전술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문후보더러 양보하시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민주당측이 당조직을 가진 강자로서 어떻게든 안후보를 꺾고 보자는 것 이외에, 그런 결과가 나왔을 때 어떻게 두 세력의 진정한 통합을 이루어낼지를 깊이 고민하는 흔적이 잘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만에 하나 안후보로 단일화되었을 때 어떻게 협력할지에 대한 고민과 준비는 더욱 없는 것 같습니다. 한동안은 경선에 지면 당이 파멸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차 있다가, 문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지금은 당 지지자들 사이에 그런 공포감을 유발해서 승기를 잡으려는 기미마저 보입니다.
무엇보다 민주통합당의 국회의원과 지도부 대다수 사이에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가 이만큼 오기까지 ‘안철수 현상’과 안철수 후보로부터 얼마나 많은 덕을 보았는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부족해보입니다. 안철수 현상과 이에 부응한 안후보의 출마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박근혜 후보의 대세가 흔들리는 일은 없었을 테고, 안캠프의 도전이 아니었더라면 민주당이 지금만큼의 쇄신노력도 기울이지 않았기 십상입니다. 설혹 문후보가 단일후보로 결정되더라도 이러한 인식과 감사의 마음, 그에 따른 쇄신노력의 지속과 안철수•문재인의 적극적인 협력, 이런 것들이 두루 갖춰지지 않고는 대선승리가 힘들 것입니다.
다른 한편 안철수 무소속 후보와 그 진영에서도 안캠프나 안후보의 열성 지지자가 아닌 타인의 관점에서 자신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캠프 일각에서 흘러나왔다는 ‘양보론’ 등에 분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에 대한 반발이 어디까지가 정곡을 찌른 정치적 대응이고 어디서부터가 현실정치에 단련이 덜 된 신인의 과잉반응일지를 반대쪽의 눈으로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안후보 출마선언 직후의 현격한 지지율 차이가 유지되어왔다면 애치당초 ‘양보론’이 발붙일 틈이 없었겠지요. 그런데 지지율의 변화가 반드시 여론조사기관의 편향성이나 민주당측의 불공정 행위 때문이기만 했을까요? 안캠프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역지사지한다면 달리 생각할 여지도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대중의 높은 기대에 비해 정작 대통령선거를 치러낼 준비는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당연한 우려들을 불식할 만한 모습을 과연 보여주었는지 스스로 물어볼 일입니다. <안철수의 생각>에 좋은 생각이 많다는 이야기를 저는 글로 쓴 일도 있고 <안철수의 약속>에 좋은 약속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만, ‘아, 안철수가 나오니 과연 다르긴 다르구나’라고 다수 국민과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로조차 경탄할 만큼 눈에 확 뜨이는 무엇이 있었던지 자문해봐야 합니다. 또한 정치쇄신이라는 시대적 화두를 내걸면서도, 각론에 들어갔을 때 중립적인 인사들의 눈에조차 정치적 아마추어리즘으로 얕보일 빌미가 없었는지도 헤아려볼 일입니다.
안후보로의 단일화 가능성에 대한 민주당측의 불안에 대해서도 입장을 바꿔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불안이 낡은 기득권세력의 집착인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반독재투쟁 등 안후보도 감사해야 할 역사를 만드는 데 기여해온 전통야당의 긍지도 무시할 수 없으며, 안후보가 민주당의 곤경을 끝내 외면하고도 과연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하는 진심어린 걱정도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두고 안후보 자신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대방의 정당한 염려와 긍지를 배려한 발언이 별로 나온 바 없는 듯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좋은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민주당의 환골탈태 내지 공동의 신당 창당 같은 것을 전제로 국민이 동의할 만한 안후보의 거취를 여러 방면으로 구상은 하고 있어야 하리라 봅니다.
아무튼 단일화규칙 협상이 필요하다면 채널을 바꿔서라도 곧 재개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저 개인으로서 그보다 더욱 절실하게 희망하는 것은 두 후보께서 가까운 장래에 다시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는 일입니다. 당장에 단일화나 단일화규칙을 놓고 담판하기보다 역지사지의 정신을 공유하고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단일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지사지는 뭐니뭐니 해도 상대방이 이길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고, 아울러 자기가 이겼을 때 상대가 어떤 처지에 놓일지를 상상하고 배려하는 마음가짐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두분이 만나신다면, 내가 이겼을 경우 나는 어떠어떠한 약점과 허점이 있으니 당신이 그것을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보완해달라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당신이 이길 경우 나는 어떤 식으로 도울 수 있고 돕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것만 된다면 나머지는 쉽게 풀리지 않을까요?
11월 15일 백낙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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