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10, 100, 1000...그 지겹던 유신 구호"
"유신 쿠데타 일으켰던 자들이 내건 쿠데타 정당화 구호"
이준구 교수는 이날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10, 100, 1000 - 10월 유신의 추억>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10, 100, 1000'이란 숫자에 대해 "이건 197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어디에서나 지겹게 마주쳤던 숫자들이었다"며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은 유신쿠데타를 일으킨 자들이 내건 쿠데타 정당화의 구호였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어 "10월 유신을 하면 100억불 수출을 달성할 수 있고,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를 달성할 수 있다는 구호"라며 "다시 말해 경제발전을 위해 박정희씨가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영구집권을 해야 하겠다는 말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오늘 신문 보니까 여당의 선대위원장이란 사람이 유신은 중화학공업화를 통해 수출 증대를 목적으로 한 기사였는데 나쁜 점만 들추어내는 건 비열한 짓이라는 망언을 했더군요"라며 홍사덕 전 의원 발언을 망언으로 규정한 뒤, "후보자 자신이 공산화를 막기 위해 불가피한 조처였다는 헛소리를 한 지 얼마 안 돼 이런 망언이 나온 걸 보면 앞으로 또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이 나올지 두렵기까지 하다"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까지 싸잡아 질타했다.
그는 이어 "한 마디로 잘라 말해 10월유신은 박정희씨의 영구집권욕이 빚어낸 비극이었다"며 "공산화 방지, 수출 증대는 모두 하찮은 핑계에 불과했다. 당시에 북한의 위협이 더 커진 것도 아니었고 우리 경제가 위기에 빠질 징후가 보였던 것도 아니었다. 정부는 오히려 북한과의 비밀 교섭을 통해 유화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던 시절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1970년대 초의 우리 경제는 어느 정도 틀이 잡혀가고 있었기 때문에 카리스마적 통치가 아니면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이 절대로 아니었다"며 "그렇기 때문에 이 땅의 민주주의를 말살해 버린 10월유신의 폭거를 경제발전이란 미명으로 정당화한다는 것은 역사를 배반하는 망발"이라며 거듭 홍 전 의원을 꾸짖었다.
그는 결론적으로 "지금까지도 10월유신을 정당화하려는 사람이라면 적당한 이유라도 찾을 수 있다면 서슴지 않고 그런 일을 되풀이할 마음 자세를 갖는다고 봐야 하겠다"며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개인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민주주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별도의 글을 통해 박근혜 후보를 향해서도 "박근혜 후보측 입장에서 보면 10월유신이 자신들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사코 이를 정당화하려고 드는 것"이라며 "과거에 연연해 하지 말고 앞날을 내다 봐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옳지 못했던 일들은 옳지 못했다는 판단하게 역사에 기록해 후세의 경종이 되도록 만들어야 마땅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10, 100, 1000 - 10월 유신의 추억
뜬금없이 의미 없는 숫자를 나열했다고 생각하실 분이 많으시겠지요?
뜬금없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아무 의미 없는 숫자들을 나열한 건 아닙니다.
이건 197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어디에서나 지겹게 마주쳤던 숫자들이었으니까요.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은 유신쿠데타를 일으킨 자들이 내건 쿠데타 정당화의 구호였습니다.
그러니까 당시에는 길거리든 방송이든 이 "10, 100, 1000"이란 구호가 덕지덕지 발라져 있었던 것이지요.
무슨 뜻이냐구요?
그들이 주장하는 바를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0월 유신을 하면 100억불 수출을 달성할 수 있고,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를 달성할 수 있다는 구호입니다.
다시 말해 경제발전을 위해 박정희씨가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영구집권을 해야 하겠다는 말이었지요.
박정희씨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맹서한 3선 개헌을 강행한 순간 이 땅의 민주주의는 빈사상태에 빠져 버렸습니다.
3선 개헌 할 때 2/3선 확보하기 위해 야당 의원 3명을 끌고 간 것도 무슨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공작의 냄새를 풍겼습니다.
그런데 박정희씨가 국민에 대한 약속을 저버린 것은 그것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5.16 쿠데타 직후 눈물을 흘리면서 정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도 곧 바로 뒤집은 전력이 있었으니까요.
하여튼 3선 개헌으로 다시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바로 총통제 도입을 통한 영구집권 얘기가 나왔습니다.
당시에는 대만이 총통제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걸 공부하러 여러 사람이 대만으로 갔다는 루머가 나돌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런 말이 나올 때마다 박정희씨와 그 추종자들은 그런 일 절대로 없다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러나 1972년 10월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 하던 박정희씨의 영구집권 계획은 "유신"이라는 미명하에 그 마각을 드러냈습니다.
사실 유신이라는 말 그 자체가 우리 언어체계에는 생소한 단어입니다.
일본의 명치유신이니 소화유신이니 하는 것에서 베껴온 것이 분명했는데, 당시 집권 엘리트들의 친일성향에 비추어 보면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일본 육사 다니면서 배운 것이 고작 그것뿐이었는데 다른 무슨 말이 머리에 떠오르겠습니까?
(사실 우리는 그 유신이라는 친일적 단어에도 심한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오늘 신문 보니까 여당의 선대위원장이란 사람이 유신은 중화학공업화를 통해 수출 증대를 목적으로 한 거사였는데 나쁜 점만 들추어내는 건 비열한 짓이라는 망언을 했더군요.
후보자 자신이 공산화를 막기 위해 불가피한 조처였다는 헛소리를 한 지 얼마 안 돼 이런 망언이 나온 걸 보면 앞으로 또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이 나올지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절대로 그건 아니라는 사실을 증언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잘라 말해 10월유신은 박정희씨의 영구집권욕이 빚어낸 비극이었습니다.
공산화 방지, 수출 증대는 모두 하찮은 핑계에 불과했구요.
당시에 북한의 위협이 더 커진 것도 아니었고 우리 경제가 위기에 빠질 징후가 보였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정부는 오히려 북한과의 비밀 교섭을 통해 유화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보수파들은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포기해야만 했다는 엉터리 논리를 폅니다.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도 있는데 왜 양자를 늘 상충관계에 두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박정희씨가 경제발전에 기여한 것은 인정하지만, 민주주의를 말살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별개의 죄악입니다.
경제발전을 위해 민주주의를 말살시켰다는 변명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어거지일 뿐입니다.
더군다나 영구집권을 하면서까지 경제발전을 추진해야 할 이유는 더욱 없었습니다.
1970년대 초의 우리 경제는 어느 정도 틀이 잡혀가고 있었기 때문에 카리스마적 통치가 아니면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이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의 민주주의를 말살해 버린 10월유신의 폭거를 경제발전이란 미명으로 정당화한다는 것은 역사를 배반하는 망발입니다.
3선 개헌으로 인해 빈사상태에 빠져 버린 이 땅의 민주주의는 10월유신을 통해 완전히 숨통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때의 숨막히는 질곡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서울 도심의 웬만한 커피숍에는 소위 기관원이란 사람들이 상주해 감시의 눈초리를 번득이고 있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얘기하면 바로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고, 정적들은 소리없이 사라져 가기도 했습니다.
나는 어떤 이유로든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10월유신을 정당화하려는 사람이라면 적당한 이유라도 찾을 수 있다면 서슴지 않고 그런 일을 되풀이할 마음 자세를 갖는다고 봐야 하겠지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개인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민주주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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