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서울대병원 빈소에 추모객들의 행렬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31일, 배우 장미희 교수가 조문을 와 애절하게 흐느껴 울어 주변을 숙연케 했다. 왜 한때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던 여배우인 장 교수는 이렇게 고인의 타계에 오열하는 걸까.
지난 2001년 년 발간된 에세이집 <희망은 힘이 세다>에 1993년에 고인을 처음으로 만난 이후 오랫동안 고인을 지켜보아왔던 장미희 교수가 쓴 글 한편이 실려 있다. 비록 짧은 글이기는 하나 고인과 장 교수의 오랜 교우, 그리고 고인의 고결한 품격을 읽을 수 있는 글이어서 전문을 게재한다. 글의 제목은 "여기 사람이 있다"이다.
“여기 사람이 있다”
김근태라는 인물에게는 사람의 냄새가 짙게 배 있다. 수많은 고절과 커다란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에는 티가 없다. 상처와 아픔을 안으로 삭이고, 또 천진한 웃음으로 그것을 밖으로 내놓을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그가 존경스럽다. 영화 <와호장룡>의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명제는 한갓 언설이 아니라 그를 통해 사실이 된다.
나는 김근태 최고위원을 1993년에 처음 만났다. 미국 미시간대에서 심포지엄이 있었는데, 나는 이장호 감독과 동행을 해서 갔었고, 현 임동원 통일부 장관도 왔던 것 같다. 그때 우리는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편안하게 여러 문제들을 이야기할 시회가 있었는데, 그는 참 솔직했다. ‘정직하다’는 것이 내가 그에게 마음속으로 준 첫 번째 평가다. 그리고 행사 마지막 날 술자리를 같이 할 기회가 있었는데, 플로어에서 춤을 출 수 있는 곳이었다. 다들 자연스럽게 춤을 거들고 있었는데, 그도 누군가에게 이끌려서 풀로어에 나왔다. 대단히 못 추는 춤이었는데, 그래도 참 매력적이었다. 주저하는 듯하면서도 스스럼없이 사람들의 동작을 조금씩 따라 하는데 그게 불편해 보이지가 않았다. 그에 대한 두 번째 생각은 ‘꽤 괜찮은 사람이다’ 하는 것이었다.
그후 김근태 의원은 재야 활동을 지속하다가, 정치인이 되었다. 그렇게 10년을 보았다.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체득하고, 그러나 또 하나도 변하지 않는다. 그에게 붙일 수 있는 세 번째 생각은 ‘한결같은 사람이다’라는 것이다. 매번 만날 때마다 새로운 주제와 생각으로 나를 놀라게 하지만, 그의 속내는 항상 같아 보인다.
장맛이 우러나오는 그를 만나는 것은 제법 행복한 일이다. 사람이 한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되고, 그가 우리 안의 ‘희망’이라 말할 수 있어 또한 즐겁다.
가을날 우리 하늘을 보고 김용택 시인이 “…우리 조국 하늘만큼 어름다운 하늘 / 어디 있으면 / 손들고 한번 나와보라고 / 큰소리로 외치라.”고 했다던가. 덩달아 나도 외치고 싶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말이다.
사이버경찰청 인터넷원서접수 http://gosi.police.go.kr/ http://www.netan.go.kr/center/crime_iframe.jsp?code=4&idCtg=10034 불법 광고질 하는 저질들을 여기에 전부다 신고 합시다. 매일같이 잡질하는 저질들을 깜방에 넣어 버립시다~!
천상병, 송건호, 박종철, 김근태..... 얼마나 더 많은 분들이 고문으로 죽어나가야 하나? 일제시대도 아닌 내 나라에서..... 너무나 맑은 영혼의 소유자들!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분들!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행동했던 분들! .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눈물난다.
거짓이 판을 치는 대한민국에서 저런 분 다시 만나기 어렵겠지. 참으로 따뜻한 분, 청렴하고 정의로운 정치인, 의로우면서도 항상 '사람과 민주주의'를 실천하셨던 분! 한 번도 시대를 비껴가지 않으셨던 분! . 가슴이 먹먹하고 일이 손에 안 잡히네요. 이제 무거운 짐은 저희에게 내려놓으세요. 고문없는 곳에서 부디 영면하소서.
추도( 내죽어 한송이 들꽃이 되어) -들꽃- 나 이제 말하지 않아요 화사하다 아름답다 청초하다 가련하다 말을 하자 않아요바람잦은 강언덕에 무리지어 흔들려도 인적 드문 산기슭에 홀로 피어 서있어도당신께서 나에게 아름답다 말하면 아름다운 건 당신이예요 당신께서 나에게 가련하다말한다면 당신은 가련한 거예요 나름으론 곱게 단장하고 서있지만 나는 말하지 않아요
고 김근태의원님을 지켜본 분들은 다들 이렇게 말한다. 그는 따뜻한 경제를 원했고 행복한 사회를 원했다고...정말로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고 복지에 노력을 많이했다고...아버지로서 최고의행복한 순간중에 하나가 딸이 결혼식장 들어갈때 손잡아 주는것이 아니겠는가...그때도 병원에서 누워있어야 했을 그 마음은 어떠했겠나...큰별이 졌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