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혈족 3명, 50년만에 '빨갱이' 누명 벗어
5.16혁명재판소에서 북한 찬양으로 유죄 받아
고인이 된 이들 3명은 안 의사의 사촌동생 안경근, 조카 안민생, 혈족 안잠 선생 등이다.
이들은 5ㆍ16혁명 직후 설치된 혁명재판소에서 북한을 찬양했다며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50년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대구지법 제12형사부(김경철 부장판사)는 27일 지난 1962년 혁명재판소에서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은 이들 3명의 후손이 낸 재심청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해당 사건의 수사기록 및 재판 기록이 보존돼 있지 않아 이를 검토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수집할 수 있는 최선의 증거인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이같이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들의 행위가 당시 정부의 정책에 부합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하더라도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활동을 찬양ㆍ고무ㆍ동조한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장되는 범위에 속한다"고 말했다.
안경근 선생은 1919년 중국으로 망명한 뒤 중국 윈난사관학교(雲南士官學校)를 졸업하고 독립운동을 하다 해방 이후 귀국했다.
안 선생 등은 1948년 김구 선생의 밀서를 갖고 북한에 들어가 김일성, 김두봉을 만나 남북연석회의를 이끌어내기도 했으나 회담이 실패로 돌아가고 생활이 어려워지자 대구로 내려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민족통일경상북도연맹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오촌 조카인 안민생(안중근 의사의 사촌동생 안봉근의 아들) 선생, 순흥 안씨 화수회 회장인 안잠 선생 등과 함께 통일운동에 앞장섰다.
안경근 선생 등은 1961년 대구 달성공원에서 열린 민족통일촉진궐기대회에서 "통일만이 살 길이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했고,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북한의 통일론을 왜곡해 국민을 선전ㆍ선동했다며 기소돼 이듬해 혁명재판소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안경근 선생은 7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한 후 1977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받고 이듬해 숨졌으며, 안민생, 안잠 선생도 각각 1995년, 1972년 사망했다.
안민생 선생의 아들 기명(68ㆍ대구 수성구)씨는 "억울함을 밝히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며 "모두 돌아가셨지만 하늘에서도 기뻐하실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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