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정부가 서민 운운할수록 약 올라"
<뷰스칼럼> 똑딱이는 '부동산거품 뇌관', 그리고 정권말기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자주 하는 지적은 "우리나라는 부동산자산 비중이 너무 높다"는 거다. 전체 자산 중 8할은 부동산에 쏠려있고, 2할만이 금융에 투자돼 있어 위태로운 구조라는 것. 올 들어 부동산침체가 계속되면서 일부 개선됐다고는 하나, 큰 틀에는 변함이 없다. 해방후 계속된 '부동산 불패 신화'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이 신화가 끝나가면서 심각한 위기가 종양처럼 커지고 있다.
은행권의 고위인사는 11일 "앞으로 은행 등 금융권 상황이 썩 좋지 않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최근 몇달째 가계대출 연체율이 급증하고 있다는 건 더이상 비밀도 아니다. 건설사들에게 해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도 빠르게 진행중이다. 그는 "아직 은행 건전성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라면서도 "문제는 추세다. 부동산 침체가 계속된다면 앞으로 심각한 위기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 역시 박현주 회장처럼 부동산자산 비중이 과도하게 높은 점을 최대 잠복위기로 분석했다. 그는 "거래 기업들을 보면 장사에서는 대충 본전치기를 하고 부동산값 상승에 따라 이를 담보로 대출 등을 늘리거나 부동산차익을 현금화해 재미를 본 기업들이 상당수"라며 "이런 기업들은 부동산값이 떨어지면서 돈 흐름이 막히고 부채가 급증하는 등 빠르게 부실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구체적 예로 "최근 골프장 경영이 급속 악화되고 있다"며 "골프장의 큰 고객이 중소기업들의 골프 접대인데 요즘 들어 골프 접대조차 버거워할 정도로 기업들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잘 나가는듯 싶던 미국경제가 2년 전에 폭삭한 것도 부동산거품 파열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자산에서 부동산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보다 더 과도하게 높아 미국형 위기가 도래할 경우 충격은 더 클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MB정부 출범후 부동산값 폭락을 막는 총체적 부양책을 펴온 결과 미국 같은 추락은 면할 수 있었지만, 올 들어서는 온갖 부양책이 벽에 부딪치면서 아파트값은 35주 연속 하락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아파트를 사줘야 할 실소비자들이 "거품이 너무 많다"며 구입을 기피하면서 거래는 올스톱 상태다.
거래 마비는 폭락의 전주곡
'거래 올스톱'이 의미하는 바는 중차대하다. 아직은 집주인들이 버티고 있다. 그러나 거래 마비 상태가 오래가면 더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 집주인 중 절반은 은행 빚을 빌려 집을 산 이들이다. 은행 빚 만기가 돌아오면 임계점에 도달한 집주인들이 앞다퉈 급매물을 쏟아내면서 연초부터 완만하게 떨어져 온 집값은 통제불능의 폭락 국면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거래 마비는 폭락의 전주곡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특히 내년 실물경제 상황이 중요하다. 올해 부동산폭락을 막은 핵심 요인 중 하나는 비록 대기업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나 다른나라들보다 양호한 경제성장률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환율전쟁'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미국·유럽 등은 중국과 한국을 한 티켓으로 본다. 환율조작을 통해 막대한 무역흑자를 보고 있다는 것. 따라서 '원화 강세'는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다. 요즘 핫머니들이 국내로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면서 주가를 띄우고 있는 것도 '환차익' 기대감 때문이다. 그러나 원화 강세는 몇달 뒤 수출에 타격을 가하는 등, 한국 실물경제에 무서운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실제로 노무라 인터내셔널은 내년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4.0%에서 3.5%로 대폭 낮췄다. 3.5% 성장은 저성장이다. 이유는 두가지. 원화 강세에 따른 수출 타격과, 계속될 부동산 경기침체다. 수출에 급제동이 걸리면 부동산거품 파열이 가속화하면서 한국경제가 수출·내수 동시침체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다.
서민 "정부가 서민 운운할수록 약 올라"
내년은 'MB정부 4년차'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청와대는 지금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50%대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고 자랑하나, 양극화 심화나 청년실업난, 생활물가 등 현실주제로 한 여론조사 결과는 이와 딴판이다. 김종인 전 경제수석 같은 경우는 "6.2 지방선거때 표출된 민심을 현재의 바로미터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IT기업 CEO도 "일자리가 고갈된 젊은 세대는 지금 절망 단계를 뛰어넘어 기성질서에 대해 거의 적개감을 나타내는 수준"이라며 "6.2 지방선거때 이들이 대거 투표장에 출현하면서 파란이 일어났듯 앞으로 치러질 총선·대선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면서 여권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배추 몇포기를 한푼이라도 싸게 사겠다고 5시간 동안 줄을 선 서민들을 보면서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며 "이런 장면을 보고도 위기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집권층은 불감증 환자일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12일자 <중앙일보> 칼럼에서 최근 자신이 한 서민대상 인터뷰 내용을 이렇게 전했다.
“그 사람들이 어디 아랫사람들 사정을 알기나 하나요?” 이게 현 정권에 대한 공통된 민원이었다. 택시기사는 인상된 LPG가격 때문에 수입이 전혀 오르지 않는다고 했고, 성남에 거주하는 중년의 노동자는 희망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일자리가 말라버린 것이다. 서울 한복판 수퍼마켓 주인은 더 나빠질 것도 없다고 했고, 농민들은 두 배로 뛴 비룟값과 삭감된 농업지원금에 거친 불만을 쏟아냈다. 지난여름 유례없는 강우로 망가진 고추밭과 배추밭을 가리켰다. “친서민정책, 그거 말뿐이지요.” 혜택이 체감되지 않는다고 했다. 정부에서 서민 운운할수록 약이 더 오른다고도 했다.
이런 푸념들은 정권마다 반복되는 현상이겠지만, 이들의 하소연에는 주목할 것이 있다. 정부와 여당이 외치는 ‘서민’이 가슴에 와 닿지 않고, 이심전심의 전류가 흐르지 않는다는 지적 말이다. 서민층의 이런 불신 기류는 중산층으로 확산될 기세다.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인터넷을 뒤지고, 시위자를 연행하고, 광장을 막는 것. 막무가내식 ‘4대 강’ 스타일, 방송을 통제하는 듯한 인상, 그리고 천안함 사태에서 빚어진 은폐혐의 등등. “독재는 아닌데, 뭔가 좀 갑갑해요.” 젊은 직장인의 한탄은 ‘훼손된 민주주의’를 뜻하는 듯했다. 시민의 목소리가, 참여의 욕구가 튕겨져 나오는 갑각류의 단단한 껍데기, 현 정권에 대한 서민의 이미지가 그랬다.
송 교수는 지난 대선때 보수 집권의 당위성을 설파했던 대표적 보수논객 중 하나다. 3년 뒤 그는 현 보수정권에 대해 이렇게 절망하고 우려하고 있다. 그는 서민·중산층의 분노를 느끼고 제대로 된 해법을 제시하는 세력만이 차기집권에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YS 말기때도...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YS 재임 말기에도 '경제 적신호'가 켜졌었다. 1995년 OECD에 무리하게 가입하기 위해 원화를 초강세로 끌어올려 1인당 소득 1만달러를 만든 게 화근이었다. 1996년 수출이 타격을 입으면서 대규모 무역적자가 발생하고, "부채도 재산"이라며 부채를 눈덩이처럼 부풀려온 기업들이 1997년초부터 줄줄이 쓰러지면서 결국 그해말 국가부도가 발생했다.
당시는 그래도 빠른 속도로 국가부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환율이 폭등하면서 막대한 무역흑자가 발생하면서 외화유동성 문제가 해소됐기 때문이다. 김종인 전 경제수석은 "그나마 그 정도에서 끝난 것은 1990년초에 대기업들이 보유했던 막대한 비업무용 부동산을 팔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며 "그렇지 않았다면 삼성 등도 모두 쓰러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기업들이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 빚을 더 겁 없이 썼을 경우 예외없이 붕괴했을 것이란 지적이다.
지금 상황은 '구조적으로' YS말기보다 심각하다. 부동산거품 시한폭탄이 똑딱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거품이 터지면서 재앙적 국면이 도래할 때, 언제나 그러했듯 서민층이 가장 힘들 것이다. 하지만 큰 흐름에서 본다면 거품이 제거되는 게 서민과 젊은 세대에게 좋다. 부동산거품이란 본디 서민과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한 경제적 수탈행위이기 때문이다.
요즘 유럽에서 가장 잘 나가는 나라가 독일이다. 영국 등 유럽 대다수 국가가 부동산거품 파열로 골병이 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에는 부동산거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 전 수석은 "독일에도 한때 부동산거품이 있었고 그 거품이 터지면서 국민들이 골병이 든 적이 있었다"며 "그후 국민 등 경제주체들이 '거품은 독약'이란 사실을 뼈저리게 체감하면서 더이상 부동산에 눈을 돌리지 않고 기업 경쟁력·제품 경쟁력을 위해 전력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앞으로 엄청난 격랑이 예견된다. 경제적·정치적 격랑이 겹치면서 YS정권 말기 못지않을 수도 있다. 많은 희생과 고통이 뒤따르더라도 독일처럼 '학습 효과'라도 제대로 건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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