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온통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놓고선"
"4대강사업 목적이 생태복원? IQ 100만 넘어도 안 속을 것"
이준구 교수는 이날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적법한 절차를 무시한 채 마구잡이로 4대강사업을 밀어붙이던 정부는 종교계의 문제 제기로 인해 뜻밖의 암초에 부딪치게 된다"며 "학자들의 반대쯤이야 우습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던 정부도 종교계의 반대에는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군다나 천주교단의 경우처럼 주교회의라는 전 교단의 대표기구에서 내린 결정이라면 교단 안의 자기편을 동원해 맞불을 놓을 수도 없다"며 "천주교뿐 아니라 불교와 개신교까지 반대대열에 동참할 기미를 보이자 그동안 느긋한 태도를 취해오던 정부는 다급하게 진화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흥미로운 것은 사태가 그 지경으로 악화된 원인에 대한 정부측의 자체분석 결과였다"며 "4대강사업의 효과에 대한 홍보 부족으로 인해 오해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정말이지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말은 처음 들어본다"고 힐난했다. 그는 "아니,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학자들과 종교인들이 바보천치라는 말인가? 홍보 팜플렛 보여주면서 4대강사업이 생태계 복원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설명하면 '아, 그랬었구나!'라고 감탄이라도 할 줄 알았다는 말인가?"라며 "미안하지만 IQ가 100만 넘어도 그런 속임수에는 넘어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더욱 웃기는 것은 반대자들이 정치적 목적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는 주장"이라며 "사실 이것은 홍보 부족 때문에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보다 훨씬 더 모욕적인 말이다. 4대강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사심에 가득찬 사람 혹은 무책임한 사람으로 몰아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의견과 다르다고 상대방을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몰아붙여도 되는 것인지"라고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그는 정부여당이 4대강사업 목적을 '생태 복원'이라고 홍보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죽어가는 새와 물고기를 살리기 위해서 빨리 사업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은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아니, 나 모르는 사이에 4대강 본류에서 물고기가 떼죽음이라도 당하고 있었다는 말인가?"라고 일갈했다. 그는 "내가 알기로는 수만, 수억 년을 자연 그대로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생태계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최소한 불도저와 포클레인이 무자비하게 짓밟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건강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며 "생태 복원이라는 허무맹랑한 선전문구에 속아 넘어갈 만큼 순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생명의 땅을 온통 죽음의 땅으로 바꿔 놓은 이 사업에 어찌 ‘생태 복원’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거듭 반문한 뒤, "시멘트 제방을 쌓은 다음 잔디 심고, 인공적으로 꽃밭을 만들 텐데, 그걸 어떻게 생태계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온갖 생물들이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생명을 구가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생태계는 이미 죽어버리고 말았다"고 개탄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다른 모든 문제들이 사라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매우 역설적인 일이다. 그러나 천안함의 가림막 때문에 일시적으로 우리 시야에서 벗어난 것일뿐 제대로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다"며 "그 가림막이 벗겨지면서 이 정부와 관련된 불편한 진실이 다시 그 정체를 낱낱이 드러내게 될 것이다. 보수언론이 아무리 그것들을 은폐해 주려고 노력한다 해도 진실은 결국 밝혀지고 말 것이라는 데 한 점 의심이 없다"고 단언했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불도저와 포클레인으로 생태 복원을 한다?
불의의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온 사회가 우울한 정적 속에 빠져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정쟁도 사치인 것처럼 느껴질 터라, 늘 시끄럽기만 하던 정가도 모처럼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종시 문제를 둘러싸고 팥죽 끓듯 요동치던 정국이 급작스레 잠잠해졌다. 어느 쪽으로 결정되느냐에 따라 국운이 엇갈릴 것처럼 호들갑을 떨던 정치인들이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의심이 될 정도다.
사건이 워낙 심각한지라 다른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문제들이 눈 녹듯 사라져 버린 것은 결코 아니다. 비상상황 때문에 일시적으로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났을 뿐 문제 자체의 심도에는 하등 변화가 없다. 천안함 사건이 한 고비를 넘기면서 다시 그 문제들이 우리를 괴롭히기 시작할 것임에 한 점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그 사건을 빌미로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한정 없이 미뤄둘 수만은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시간이라는 측면이 중요한 문제라면 본격적 논의를 미루는 것이 위험스럽기까지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차피 해결을 해야만 하는 문제라면 상황이 조금 어렵더라도 지체 없이 논의를 재개해야 마땅한 일이다. 상황을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결국 되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되는 결과를 빚을지도 모른다.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덮여 버린 수많은 문제들 중 가장 시급하게 논의의 재개를 필요로 하는 것은 4대강사업 문제다. 이 사업이 극심한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온 국토를 헤집어 놓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천안함 사건으로 국민의 시선이 다른 데로 쏠린 틈을 타서 안심하고 사업의 진도를 높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공정을 앞당기기 위해 밤낮없이 중장비를 가동하는 모습을 가리켜 어떤 일간지는 ‘전쟁’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4대강사업에 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하려면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의 상태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그 논의가 갑자기 중단된 지점으로 돌아가 보자. 적법한 절차를 무시한 채 마구잡이로 4대강사업을 밀어붙이던 정부는 종교계의 문제 제기로 인해 뜻밖의 암초에 부딪치게 된다. 학자들의 반대쯤이야 우습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던 정부도 종교계의 반대에는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학자들의 반대를 타넘는 것은 누워서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일이다. 언제나 그렇듯 일부 ‘불순 교수’들의 책동으로 넘겨 버리면 이미 반 이상이 해결된 셈이다. 거기에다 자기편 학자들을 동원해 맞불을 놓으면 승부는 보나마나 뻔한 것이 되고 만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듯, 정부가 당근과 채찍을 통해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학자는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리고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곡학아세의 기법은 거의 무궁무진이라고 할 수 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인데 무슨 말을 하든 그 어떤 책임도 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계의 경우에는 정부로서 만만한 상대가 결코 아니다. 영혼의 구제가 본업인 종교인들이 세속의 문제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왔을 때는 그만큼 단단한 각오가 밑에 깔려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더군다나 천주교단의 경우처럼 주교회의라는 전 교단의 대표기구에서 내린 결정이라면 교단 안의 자기편을 동원해 맞불을 놓을 수도 없다. 천주교뿐 아니라 불교와 개신교까지 반대대열에 동참할 기미를 보이자 그동안 느긋한 태도를 취해오던 정부는 다급하게 진화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사태가 그 지경으로 악화된 원인에 대한 정부측의 자체분석 결과였다. 4대강사업의 효과에 대한 홍보 부족으로 인해 오해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정말이지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말은 처음 들어본다. 아니,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학자들과 종교인들이 바보천치라는 말인가? 홍보 팜플렛 보여주면서 4대강사업이 생태계 복원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설명하면 “아, 그랬었구나!”라고 감탄이라도 할 줄 알았다는 말인가? 미안하지만 IQ가 100만 넘어도 그런 속임수에는 넘어가지 않는다.
더욱 웃기는 것은 반대자들이 정치적 목적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는 주장이다. 사실 이것은 홍보 부족 때문에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보다 훨씬 더 모욕적인 말이다. 4대강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사심에 가득찬 사람 혹은 무책임한 사람으로 몰아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의견과 다르다고 상대방을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몰아붙여도 되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4대강사업의 즉각 중단을 외치는 신부님, 스님, 목사님에게 손톱만큼의 정치적 목적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세속의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종교에 몸을 바친 그 분들에게 도대체 어떤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말인가? 그분들의 어두운 표정에서 유일하게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파괴되는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과 무분별한 파괴행위에 대한 순수한 분노일뿐이다. 그런 거룩한 동기를 정치적 목적과 결부시키려는 시도 그 자체가 불순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나에 관한 일은 나 스스로가 제일 잘 알지만, ‘4대강사업 결사반대’를 외치는 나에게 그 어떤 정치적 목적도 없다. 한반도대운하에서 4대강사업에 이르는 대규모 생태파괴 프로젝트에 대한 내 반대입장은 정치와 전혀 무관함을 떳떳하게 밝힐 수 있다. 현 정부를 곤란에 빠뜨리기 위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는 말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어불성설이다. 어느 정부든 간에 이런 무지막지한 생태 파괴를 기도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결사반대의 깃발을 높이 들어 올렸을 것이다.
4대강사업 반대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수많은 학자들도 이런 나와 조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자기 일 하기도 바쁜데 그들이 왜 이런 일에 매달려 아까운 시간을 쓰고 있을까? 돈을 더 벌려고? 혹은 권력을 잡기 위해서? 아니면 곧 있을 지방선거에 출마할 생각이라도 있어서?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실례라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반대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고작 생각해낸 대책이 적극적 홍보를 통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사람들을 설득시킨다는 것이었다. 4대강사업의 주요한 의미가 생태 복원에 있다는 사실을 적극 홍보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자성의 말에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죽어가는 새와 물고기를 살리기 위해서 빨리 사업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은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아니, 나 모르는 사이에 4대강 본류에서 물고기가 떼죽음이라도 당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생태 복원을 말하려면 우선 대규모로 파괴된 생태계가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어느 전문가든 붙잡고 물어 보라. 4대강 주변에 대규모로 파괴된 생태계의 사례가 정말로 존재하는지를. 내가 알기로는 수만, 수억 년을 자연 그대로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유지되어 온 생태계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최소한 불도저와 포클레인이 무자비하게 짓밟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건강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생태 복원이라는 허무맹랑한 선전문구에 속아 넘어갈 만큼 순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요즈음 인터넷 공간에서 떠도는 4대강사업 공사 전과 후를 비교한 사진들을 보면 주변 생태의 파괴가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 가보지 않고서도 눈에 훤히 보인다. 하천 습지의 무성한 버들숲과 풀덤불들은 포클레인의 칼날에 뿌리째 뽑혀 나가고 온통 보기 흉한 황토밭으로 변해 버렸다. 거기서 대대로 보금자리를 꾸미던 살던 메뚜기며 잠자리, 귀뚜라미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갔을까? 불도저에 깔려 죽어 버렸거나 정처 없는 방랑길을 떠났을 것임에 틀림없다. 물속을 유유히 헤엄치고 다니던 물방개며 물땡땡이, 물위를 미끄러지듯 휘젓고 다니던 소금쟁이들도 운명도 똑같았을 것이고.
생명의 땅을 온통 죽음의 땅으로 바꿔 놓은 이 사업에 어찌 ‘생태 복원’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는 말인가? 공사를 진행할 때만 일시적으로 생긴 문제라면 그나마 다행일 수 있지만, 문제는 항구적인 생태 파괴가 일어났다는 데 있다. 시멘트 제방을 쌓은 다음 잔디 심고, 인공적으로 꽃밭을 만들 텐데, 그걸 어떻게 생태계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온갖 생물들이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생명을 구가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생태계는 이미 죽어버리고 말았다.
정부는 정녕 건강한 생태계가 무엇을 뜻하는지 몰라서 그런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고 있을까?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잘 알면서도 정치적 목적에서 국민을 기만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정치적 목적’이란 말은 자신들을 겨냥해 해야 할 말이지 순수한 마음에서 4대강사업을 반대하는 사람에게 던질 말이 아니다. 이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철저한 정치적 계산하에서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사업을 우격다짐으로 밀어 붙이고 있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다른 모든 문제들이 사라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매우 역설적인 일이다. 그러나 천안함의 가림막 때문에 일시적으로 우리 시야에서 벗어난 것일뿐 제대로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다. 그 가림막이 벗겨지면서 이 정부와 관련된 불편한 진실이 다시 그 정체를 낱낱이 드러내게 될 것이다. 보수언론이 아무리 그것들을 은폐해 주려고 노력한다 해도 진실은 결국 밝혀지고 말 것이라는 데 한 점 의심이 없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4대강사업을 바로 잡는 길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다. 무모한 생태 파괴를 즉각 중단하고 원점으로 돌아가 그 사업의 타당성을 냉철하게 검토하는 것 이외의 다른 합리적 대안은 없는 것이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고, 대부분의 국민이 그 타당성에 의문을 갖고 있는 사업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것은 국론분열을 자초하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홍보를 통해 반대여론을 무마시키겠다는 유치한 발상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태 파괴를 생태 복원이라고 치장해 홍보한다 해서 누가 설득이 되겠는가? 그런 유치한 홍보에 넘어갈 사람들이라면 애당초 결사반대의 기치를 들어 올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전문적 식견에 비추어 볼 때, 그리고 학자와 종교인의 양심에 비추어 볼 때 “이건 아니다.”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사심 없는 순수한 신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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