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MB정책, 3년뒤 'F학점' 항목도 많아"
"자기반성 소홀히 하면 MB지지율 다시 바닥으로 떨어질 수도"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내린 이명박 정부 2년에 대한 총평이자 경고다.
'미스터 쓴소리' 이준구 교수는 지난 27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A4용지 6장 분량의 장문의 'MB 2년 평가서'를 통해 MB의 경제, 교육 정책을 조목조목 집중 분석했다.
그는 MB의 경제정책에 대해선 "이명박 정부의 점수를 올려준 것은 결코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아니었다"며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를 비교적 순탄하게 넘을 수 있던 비결은 상식에 입각한 정책기조로 되돌아온 데 있다"고 지적했다.
MB의 교육정책에 대해선 MB교육정책의 간판인 자율고와 입학사정관제가 각종 비리에 휘말려들고 있음을 지적한 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 갖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이라며 "지금 우리 교육제도가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는지에 대해 도대체 갈피를 잡을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고 꼬집었다.
경제, 교육정책을 집중 분석한 이 교수는 다음과 같은 경고성 결론에 도달한다.
"지난 2년 동안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성적표에는 많은 항목이 ‘미정’(未定)으로 기입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앞으로 3년 동안 어떻게 할지를 보지도 않고 확정된 학점을 부여할 수 있는 항목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지지율의 급상승에 고무되어 스스로 많은 항목에 A학점을 미리 써넣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3년 후 F학점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엿보이는 항목도 꽤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 교수는 특히 최근의 최대 현안인 세종시와 4대강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경고를 했다.
우선 세종시와 관련해선 "세종시 문제도 정부 부처 이전의 경제적 효과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사회통합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세종시 수정안이 갖는 경제적 장점만을 강조하는 접근법으로는 성난 민심을 수습하기도 힘들고 반대파를 설득하기도 힘들다. 나만 옳다는 독선이 문제의 해결을 가로막고 있는 최대의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4대강사업과 관련해서도 "4대강사업 역시 반대자들은 모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나만 우리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는 독선이 문제의 해결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며 "준비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밀어붙인 이 사업의 문제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전 국토의 생태계에 심각한 교란이 올 것이라는 걱정이 단순히 기우가 아니었음이 명백하게 입증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이명박 정부의 2년
1. 머리말
한때 20%선 아래로까지 떨어졌던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이제 거의 50% 수준에 이를 정도로 급상승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를 그런대로 순탄하게 넘긴 데다가 국제관계에서 몇 가지 성과를 거둔 것이 지지율 상승의 주된 이유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지율 상승에 한껏 고무된 정부, 여당은 지난 2년 동안 무슨 위대한 업적이라도 이루어낸 것처럼 들뜬 표정이다.
물론 이명박 정부의 2년이 완전한 실패작이라고 규정한 야당의 평가에도 어느 정도 과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냉철한 눈으로 평가해 볼 때 그 2년을 큰 성공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운 것이 틀림없다. 2008년 2월에 비교해 경제, 사회, 교육 중 어느 것 하나라도 특히 더 좋아졌다고 평가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지지율의 급상승 하나만을 갖고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는가?
가장 걱정스러운 대목은 그런 잘못된 낙관론에 들떠 지금 이 시점에서 필요한 철저한 자기반성을 게을리 하지나 않을까라는 점이다. 지난 2년을 학습기라고 본다면 앞으로의 3년은 그 학습 성과에 기초해 본격적으로 정책 구상을 실현해 나갈 시기다. 학습 성과를 제대로 얻기 위해서는 냉철하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며, 따라서 이 시점에서의 철저한 자기반성은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더군다나 지금 우리의 상황은 자기만족에 사로잡혀 두 손을 놓고 있을 때가 결코 아니다. 현 정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소통과 포용의 부재는 우리 사회를 그 어느 때보다 더 분열된 양상으로 몰아가고 있다. 반대파를 이해하고 포용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 넣으려 하니 제대로 통합이 이루어질 리 없다. 모든 일에서 그렇게도 철저히 내편, 네 편을 가르려 하니 갈등의 골은 점차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사실 이명박 정부라는 작품을 만들어낸 것은 바로 사회적 갈등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좌파정부 10년을 청산해야 한다‘는 구호 그 자체가 사회적 갈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이 구호는 그동안 잠재된 상태로 내재되어 있던 갈등의 구도를 표면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상대방을 청산의 대상으로 삼는 상황에서 화해와 타협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 출범 이후 소통과 포용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어도 갈등의 봉합이 어려운 상태였다. 그런데도 집권세력은 지금까지 줄곧 극단적인 대립의 정치를 추구해 왔다. 오죽하면 여당 내부에서조차 넘기 어려운 깊은 갈등의 골이 패이게 되었겠는가? 다른 측면에서 아무리 훌륭한 성과를 거뒀다 하더라도, 사회적 갈등을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으로 치닫게 만든 이 정부를 성공적인 정부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이명박 정부의 눈에는 지난 정부가 한 것 모두가 ‘대못’이고 따라서 청산의 대상이다. 그래서 출범 초기에는 모든 것을 가리지 않고 뜯어고치겠다는 거창한 기세로 나왔다. 그즈음 내가 가장 걱정스럽게 생각한 것은 바로 그 성급함이었고, 그런 걱정이 나로 하여금 “섣부른 실험 삼가야 한다”라는 글을 쓰게 만들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와 같은 섣부른 실험들이 우리 사회, 경제를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게 만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성격에 상당한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는 경제든 교육이든 뭐든지 뜯어고칠 듯한 행보를 보였지만 정작 크게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지금 이 시점에서 냉철하게 평가해 보면 거의 참여정부 때로 회귀한 정책이 생각 밖으로 많다. 최소한 그동안 내가 유심히 관찰해온 경제와 교육의 측면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그 결과 현재 이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의 기조를 신자유주의적인 것이라고 평가하기 힘들게 되었다. 그렇다면 출범 초기에 높이 들어 올렸던 신자유주의의 깃발을 왜 슬그머니 내려놓게 되었을까? 짐작컨대 정작 바꾸려 하고 보니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던 것 같다. 경제와 교육의 측면에 초점을 맞춰 지난 2년 동안의 이명박 정부가 보인 행보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논의해 보려고 한다.
2. 경제부문
이명박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의 바람을 등에 업고 화려한 돛을 올렸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경제의 측면에서도 이제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별로 남지 않은 상황이다. 시장의 자율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당초의 약속과 달리, 편의에 따라 수시로 개입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가로막는 대못들을 뽑아버리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기업들에게 물어보면 경영여건이 현저하게 개선되었다는 대답을 듣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이명박 정부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여겨졌던 감세정책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당초의 기대와 달리 소비나 투자를 촉진하는 데 별 효과가 없음을 자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감세정책이 별 효과를 내지도 못하면서 재정건전성을 해치는 결과만 가져온다는 지적에 꿈쩍도 하지 않던 정부가 아니었던가? 그랬던 정부가 슬그머니 뒷걸음을 치는 모습을 보면 애당초 감세정책에 대한 믿음이 그리 굳건한 것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단지 이름만 재정경제부에서 기획재정부로 바뀌었을 뿐, 경제정책의 기조를 보면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명박 정부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엇이 다른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기 바란다. 최소한 이 정부의 출범 초기에는 눈에 띄는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신자유주의적 정책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차별성을 보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환율이나 물가를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개입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공공연하게 드러낸 것이 그 좋은 예다.
공기업 개혁의 문제도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말을 생각나게 만든다. 공기업의 고질적인 비효율성을 하루아침에 쓸어버릴 듯 팔 걷어붙이고 나섰지만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는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공기업 요직에 자기 식구들을 박아놓은 것 이외에 이렇다 할 변화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가까운 장래에 민간부문의 기업 못지않은 효율성으로 무장한 공기업을 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물론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라든지 금산분리 완화 같은 이명박 정부의 야심작은 아직 살아 있는 상태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이 우리 경제에 얼마나 이로운 효과를 낼지는 아직 미지수인 채로 남아 있다. 이들이 우리 경제에 득이 될지 아니면 실이 될지 그 자체가 불분명한 상황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정책의 변화를 ‘개혁’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생각한다.
요약해 말하자면, 경제의 측면에서 2008년 2월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출범 초기에 참여정부와 차별성을 두려고 일시적으로 노력한 바 있지만, 스스로 뒷걸음치고 말았다. 솔직히 말해 나는 무언가 학습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자발적으로 후퇴한 것이라 생각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만약 출범 초기의 정책기조를 고집스럽게 밀어붙였다면 우리 경제는 더 큰 어려움에 봉착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예컨대 감세정책을 그대로 밀어붙였다면 국가채무에 대한 우려가 심각한 수준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었다. 최근 일부 유럽 국가의 예에서 볼 수 있듯, 국가채무의 대 GDP 비중이 크게 높지 않아도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곧바로 위기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국가채무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감세정책을 밀어붙였다면 뜻하지 않은 위기상황에 봉착했을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말해 경제부문에서 이명박 정부의 점수를 올려준 것은 결코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아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를 비교적 순탄하게 넘을 수 있던 비결은 상식에 입각한 정책기조로 되돌아온 데 있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이든 뭐든, 이 세상에 경제를 살리는 비방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747공약’을 비웃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나는 이 정부가 지난 2년의 경험으로부터 건전한 상식에 입각한 정책만이 유일한 해답이라는 교훈을 배울 수 있었기를 바란다.
3. 교육부문
교육의 측면에서도 기본적으로 참여정부 때와 별다를 것이 없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인사가 참여정부의 상징과도 같은 ‘삼불정책’ 불가피론을 역설하는 광경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삼불정책을 동네북처럼 때려대던 사람들이 갑자기 이것을 옹호하고 나선 모습이 무척 낯설기는 하다. 그러나 그동안 입버릇처럼 부르짖던 ‘대학의 자율’이란 것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는 분명하게 읽을 수 있다.
내가 보기에 지금 펴고 있는 교육정책은 하나같이 사교육을 한층 더 부추기게 될 것들만 있다. 언론 보도를 보면 이와 같은 우려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사교육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믿기 힘든 말만 거듭하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근거 없는 자신감이 나오는지 내 나쁜 머리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정부는 ‘입학사정관제’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지만, 머지않아 현실의 높은 벽을 실감하게 될 것이 너무나도 뻔하다. 미국에서 입학사정관제가 제대로 정착될 수 있었던 것은 사회 전체에 걸쳐 단단한 신뢰의 기반이 구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입학사정관제란 본질적으로 상호신뢰가 없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제도다. 우리 사회처럼 불신의 골이 깊은 사회에서 이런 성격의 제도는 출범 초기부터 온갖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미 수상실적을 위조했느니, 자기소개서나 추천서를 대신 써줬느니 하는 문제들이 하루가 멀다 않고 터져 나오는 실정이다. 나도 서류전형에 몇 번 참여해본 경험이 있지만, 제출된 자료의 신빙성에 의심이 가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마음먹고 거짓된 자료를 만들기로 한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돈만 많이 들인다면 합법적으로 스펙을 높일 수 있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 이 시점에서 불거져 나온 문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얼마나 더 심각한 문제가 얼마나 더 많이 터져 나올지 아무도 자신 있게 예측할 수 없다. 심지어 입학사정관이 과연 객관적이고 공정한 자세로 학생들을 평가하고 있는지조차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몇 건의 불공정 사례가 폭로되기만 하면 입학사정관제는 바로 용도폐기되는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또한 입학사정관제의 실시가 사교육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도 순진하기 짝이 없는 기대다. 우리 사회의 고도로 발달된 사교육시장은 어떤 입시제도가 도입된다 해도 새로운 사교육 수요를 창출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사실 입학사정관제처럼 판정기준이 모호한 경우에는 사교육 수요를 부추길 가능성이 한층 더 크다.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평가되는지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융단폭격식의 사교육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학부모의 압도적 다수가 입학사정관제로 인해 사교육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 학부모보다 더 정확한 예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정부는 어떤 특별한 예견의 능력을 갖고 있기에 아직도 입학사정관제가 사교육을 줄일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는지 그 속내를 알 길이 없다. 입만 열면 시장의 원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사교육 수요자의 말에 귀를 막는 이유가 무언지 모르겠다.
최근 터져 나온 자율고의 부정입학 사건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 도처에서 곪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물론 일부 비양심적인 교육자들과 학부모들 때문에 이런 문제가 빚어진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자율고를 통해 평준화의 틀을 깨려고 한 무리수가 본질적 원인임을 알 수 있다. 엄청나게 비싼 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는 가정의 자제에게만 특별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발상이 문제의 본질인 것이다.
자율고 도입이 기본적으로 부유층을 위한 정책이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난한 가정의 학생은 등록금을 면제해 준다고 해도 다닐 수 없는 정도라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만약 돈이 부족해 공교육이 부실해진 것이라면 당연히 정부의 부담으로 공교육의 수준을 전반적으로 높여야 한다. 이런 기본적 의무를 무시하고 돈 많은 사람들끼리 알아서 좋은 교육을 받으라고 내맡긴 데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돈 많은 사람만 밍크코트를 사서 입는 데 시비를 걸 사람은 없다. 그러나 돈 많은 사람만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문제가 이만저만 심각한 것이 아니다.
차라리 자율고가 부유층만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솔직히 인정했으면 부정입학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비난을 피하기 위해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이란 기형적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에 화를 부르게 되었다. 나는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 다양화 프로그램 전반에 걸쳐 이와 비슷한 문제들이 연이어 발생할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은 이와 같은 혼란을 수습하는 데만도 엄청난 비용을 들여야 할 것이다.
‘선택가능성이 많을수록 좋다’는 신자유주의적 믿음은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선택가능성이 너무 많은 경우에는 어떤 것을 버리면 된다고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필요없는 선택가능성이라도 버리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선택가능성이 적은 단순한 체제가 실제로는 더 우월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신자유주의적 믿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교육 다양화 프로그램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 갖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 교육제도가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는지에 대해 도대체 갈피를 잡을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만약 그와 같은 변화가 어떤 분명한 실익을 가져다준다면 일시적인 혼란은 견딜 만한 비용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변화는 하나하나가 모두 그 득실 자체가 불분명한 것들뿐이다. 이 정부의 임기가 끝나고 교육정책의 종합적 성적표가 나올 때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4. 맺음말
이명박 정부가 출범 직후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에서 벗어나 그런대로 틀을 갖춰 가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바로 이 점에 대한 국민의 인정이 지지율의 급격한 상승으로 나타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지율의 급상승에 안주해 냉철한 자기반성을 소홀히 한다면 지지율은 언제든 다시 바닥으로 굴러 떨어질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동안의 경험에서 잘 알 수 있듯, 지지율이란 것은 작은 상황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지표다.
지금 이명박 정부는 해결하기 힘든 숱한 과제를 안고 있다. 예컨대 세종시나 4대강사업 문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 파묻혀 있다. 이 문제들이 어떤 방향으로 진전되든 정부는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는 데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 분명하다. 만약 이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심각한 사회적 갈등의 차원으로 비화된다면 정부에게 미치는 정치적 타격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시점에서 집권세력이 가장 힘을 싸야 할 부분은 갈래갈래 찢어진 민심을 수습하고 사회통합을 실현하는 일이다. 세종시 문제도 정부 부처 이전의 경제적 효과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사회통합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세종시 수정안이 갖는 경제적 장점만을 강조하는 접근법으로는 성난 민심을 수습하기도 힘들고 반대파를 설득하기도 힘들다. 나만 옳다는 독선이 문제의 해결을 가로막고 있는 최대의 걸림돌이다.
4대강사업 역시 반대자들은 모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나만 우리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는 독선이 문제의 해결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준비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밀어붙인 이 사업의 문제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전 국토의 생태계에 심각한 교란이 올 것이라는 걱정이 단순히 기우가 아니었음이 명백하게 입증될 날이 멀지 않았다. 최소한 무엇이 문제라는 말에는 귀를 기울여야 보완책이라도 마련할 수 있을 텐데,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이니 걱정만 늘어날 따름이다.
국민의 높은 지지율이 정부가 하는 모든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라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지지율 상승의 주된 원인은 경제와 국제관계의 측면에서 이룬 몇 가지 성과에 있음이 분명하다. 다른 측면에서는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부분도 많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50%에 가까운 국민이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수의 국민이 지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지난 2년 동안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성적표에는 많은 항목이 ‘미정’(未定)으로 기입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앞으로 3년 동안 어떻게 할지를 보지도 않고 확정된 학점을 부여할 수 있는 항목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지지율의 급상승에 고무되어 스스로 많은 항목에 A학점을 미리 써넣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3년 후 F학점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엿보이는 항목도 꽤 많은 것이 사실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정부가 무엇보다 우선 힘써야 할 부분은 소통과 포용의 풍토를 확립하는 일이다. 이것은 성공적인 정부가 되기 위해 필수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전제조건이다. 국민의 절반 이상으로부터 ‘잘못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한 성공적인 정부가 될 수 없다. 그 절반 이상의 국민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정부에 대한 그 사람들의 평가도 결코 바뀔 리 없다. 앞으로의 3년을 위해 가장 명심해야 할 것이 바로 이 사실임을 상기시켜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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