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한국판 '분노의 포도'를 원하는가"
"그 알량한 자전거도로 때문에 농민들 쫓겨나고 있어"
4대강 사업 저지 국민소송을 진행중인 이상돈 교수는 이날 자신의 홈피에 올린 글을 통해 지금 북한강변에서 개신교와 천주교의 4대강 사업 저지 단식농성 등이 진행중임을 전한 뒤, 두물머리와 조안면 등 북한강변에서 유기농사를 짓다가 이를 금지 당한 농민들이 "자신들을 생업의 현장으로부터 몰아내는 이유가 그 알량한 자전거 도로 건설 때문이라는 데 특히 분노하고 있다"며 농민들의 분노를 전했다.
이 교수는 대공황때 존 스타인 벡의 <분노의 포도>를 거론한 뒤, "<분노의 포도>는 성경에서 말하는 ‘순교’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분노의 포도’는 십자가를 지고 수난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의 마지막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다. ‘분노의 포도’는 포도를 밟고 가는 것이고, 그러면 길바닥은 핏자국으로 점철되는 형상을 띄게 된다"며 4대강 사업 현장에서도 동일한 저항이 발생할 것을 우려했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두물머리와 북한강변 : 기도와 분노
천주교와 불교에 뒤이어 개신교에서도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독교 장로회 생태공동체 운동본부(공동집행위원장 : 윤인중 목사) 소속 목사님들이 양수리에서 멀지 않은 남양주군 조안면 송촌리 북한강변에서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릴레이 금식기도를 펼치고 있다. 2월 17일에 시작된 이 금식기도는 4월 4일 부활절까지 계속될 것인데, 기독교인들에게 이 기간은 ‘4순절’이다.
내가 지난 토요일(20일) 늦은 저녁에 잠시 찾았던 금식기도 현장은 북한강변 하천부지에 자리 잡은 컨테이너였다. 금식기도회의 규모가 교세를 자랑하는 듯이 여겨지는 요즘의 세태와는 동떨어진 현장이었다. 생명의 강 지키기 운동을 이끌고 계신 조영희 목사님이 계셨고, 잠시 후 인근 영진교회 김선구 목사님이 도착하셨다. 컨테이너에서 멀지 않은 높은 지대에 기도장소를 마련해서 목사님이 한 분씩 릴레이로 홀로 철야 금식기도를 하고, 컨테이너에는 목사님 한두 분과 신자분들이 같이 기도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46명의 목사님과 200여명의 신자가 4월 4일 부활절까지 계속될 이 기도회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한다. 두 분 목사님과 이런저런 말을 나누었는데, “4대강 사업과 MB 정권이 무너지면 한국 개신교, 특히 대형 개신교에는 일종의 아노미 현상(정신적 공황)이 오지 않겠는가?”는 나의 물음에 대해, 두 목사님들은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하셨다.
두물머리에선 천주교 신부님들의 릴레이 단식기도가 벌써 40여 일째 이어져 오고 있다. 2월 17일부터는 매일 오후 3시에 4대강을 지키기 위한 야외 미사가 열리고 있다. 2월 20일 미사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의 조해봉 신부가 집전을 했다. 남한강 위쪽에선 중장비가 강바닥을 마구 파헤치고 있고, 강 아래에선 이에 반대하는 신부님들과 목사님들의 간절한 기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22-23일간으로 예정된 토지 측량을 앞둔 유기농 대책위원회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많은 농민들이 지난번의 1차 측량 때 공무원들과 충돌을 빚어 불구속 기소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또 다시 충돌이 있으면 구속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물머리 및 그 주변지역 유기농가 문제
두물머리와 조안면 등 북한강변의 유기농가는 대부분 하천부지에 자리 잡고 있다. 하천부지는 국유이며, 국가(하천관리청)는 5-10년을 기간으로 하천점용허가를 내어주고, 허가를 받은 사람은 일정한 점용료를 국가에 납부하고 허가 조건에 따라 사용을 한다. 기간을 정해서 허가를 주기 때문에 기간이 지나면 이론적으로 하천관리청은 기간연장을 거부할 수도 있고, 허가 내용을 변경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수차례 기간 연장을 통해 오랫동안 합법적으로 평온하게 하천부지에서 농사를 지어오고 있는 농민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농사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를 갖게 된다. 행정청은 이런 신뢰를 함부로 파괴해서는 안 되는 데, 이를 ‘행정상 신뢰보호 원칙’이라고 한다.
국토해양부가 두물머리와 조안면 등지의 유기농가에 대해 하천점용허가를 취소하고 보상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유기농가들이 갖고 있는 점용권이 함부로 취소할 수 없는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정부는 ‘보상’이란 당근을 던져서 사업을 추진하려고 하나, 사실 그 ‘보상’이란 것도 국민이 낸 세금이다. 국민의 2/3가 반대하는 사업을 이렇게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국민이 낸 세금을 대단한 보너스나 되는 식으로 보상금으로 내어 놓는 것이다.
유기농민들이 갖고 있는 불만은 그들에게 주어질 보상이 충분한가 아닌가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대통령 후보와 도지사 후보 시절에 그들을 찾아와서 같이 사진을 찍고, 그런 자신을 들어 자신들을 ‘친환경후보’로 내세웠던 이명박 대통령과 김문수 지사의 위선과 가식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생업의 현장으로부터 몰아내는 이유가 그 알량한 자전거 도로 건설 때문이라는 데 특히 분노하고 있다.
‘분노의 포도’를 원하는가
1930년대 미국 중서부의 황폐한 농촌을 그린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라는 소설이 있다. 여기서 ‘포도’가 포장도로인지 과일 포도인지를 둘러싼 ‘논쟁 아닌 논쟁’으로도 유명한 소설이다. 물론 여기서의 ‘포도’는 과일 포도를 의미한다. 포도가 나지 않는 미국 중서부를 무대로 한 소설에 ‘포도’가 나오니까 그런 오해가 나오는 것인데, 당시 미국 농촌의 도로는 대개 비포장이었기 때문에 ‘포장도로’라는 해석은 우스운 것이다.
‘분노의 포도’는 성경에서 말하는 ‘순교’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분노의 포도’는 십자가를 지고 수난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의 마지막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다. ‘분노의 포도’는 포도를 밟고 가는 것이고, 그러면 길바닥은 핏자국으로 점철되는 형상을 띄게 된다. ‘분노의 포도’는 ‘순교’와 ‘신(神)의 분노’를 상징하는 것이다. 당시 미국 중서부를 휩쓸었던 거대한 먼지 폭풍으로 황폐해진 농촌을 떠나 이리저리 떠돌아야만 했던 이농민들의 ‘분노’를 존 스타인벡은 그렇게 전했던 것이다. 무모하고 불법적인 4대강 사업으로 인해 4대강 하천변 곳곳에서 한국판 ‘분노의 포도’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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