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수 잘못 찾은 정부의 '세종시 퍼즐'
정부, '세종시 역풍'에 당황. '특혜 세일'로 국면전환 시도
정부여당, 예기치 못한 상황 전개에 당황
세종시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것은 지난 9월3일 정운찬 총리가 총리에 내정된 직후 기자회견에서 세종시 수정 입장을 밝히면서였다. 그로부터 50일 가까이 지난 지금, 여론 흐름은 정부여당의 당초 예상을 크게 벗어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우선 박근혜 전 대표의 제동이 정부 예상보다 강력한 파괴력으로 세종시 수정에 급제동을 걸었다. '국민에 대한 신의'를 앞세운 박 전 대표의 '원안+알파'는 충청권뿐 아니라 일반 다수 여론의 지지를 얻으면서 정부여당을 당혹케 했다. 이에 직계 친이계는 직접 박 전 대표 공격에 나섰으나 계파갈등만 증폭시켰을뿐, 별무소득이었다.
'박근혜 파워'에 당황한 정부는 여론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 '파격적 세종시 특혜' 카드를 꺼내들었다. 파격적 가격의 땅 공급, 세금 혜택, 재정 지원 등 말 그대로 전방위 특혜로 기업과 대학들을 세종시로 끌어들이려 했다. 하지만 또하나의 자충수였다. 정부의 파격 특혜에 타지역에 투자하려던 기업들이 일제히 세종시로 관심을 돌렸고, 영·호남, 충북, 강원 등 모든 지방이 "대한민국엔 세종시밖에 없냐"며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대부분이 한나라당 소속인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연일 정부를 성토했고 지역 의원과 언론들도 울분을 토해내면서, 한나라당 아성인 TK지역에서조차 세종시 원안 고수 여론이 높아지기에 이르렀다. 또한 정부가 내심 지지를 기대했던 수도권에서도 정부를 바라보는 눈길이 싸늘해지고 있다. 여기에는 4대강 사업 강행 등, 또다시 국민과의 소통을 도외시하는 독단적 국정운영에 대한 불만이 가세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듯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한나라당 친이계 내에서조차 이탈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지역구의 험악한 분위기를 볼 때에 세종시 수정에 앞장 섰다간 다음 총선에서 낙마할 위험성이 커졌기 때문. 때문에 요즘 한나라당에선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비판하지는 못하나, 대신 정운찬 총리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또한 청와대 일각에서도 정부부처를 한곳도 옮길 수 없다던 초반의 강경 입장에서 물러나 "3~5개 정도는 옮길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절충안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를 다독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3~5개를 옮길 바에야 원안대로 9개 모두를 옮겨야 하는 게 아니냐"는 반론에 부딪치면서 아직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
기호지세 MB, 기업·대학 유치에 총력전
문제는 그렇다고, 이 대통령 입장에서 볼 때 지금 와서 세종시 수정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없던 일'로 했다간 즉각 레임덕이 시작될 게 분명한 기호지세, 즉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유일한 해법은 수정 반대여론을 일거에 잠재울 수 있는 '입이 쩍 벌어지는 뉴세종시 대안'밖에 없고, 이를 위해 정부는 동원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해법 만들기에 부심하고 있다.
21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교육과학기술부 김관복 대학지원관은 20일 “19일 서울대 주종남 기획처장에게 세종시 이전 초안을 마련하라고 요청했다”며 “지금 계획으로는 세종시에는 서울대와 고려대, KAIST 등 3개 대학이 입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 모교인 고려대, 정 총리가 총장을 맡았던 서울대, 그리고 국립 KAIST 분교 등을 세종시에 세우겠다는 셈이다.
세종시에 입주할 기업들 리스트도 연일 흘리고 있다. 제2롯데월드 허가로 정부에게 신세를 진 롯데그룹이 가장 먼저 롯데쇼핑 등 일부 계열사의 이전 의지를 밝혔다. 정부가 인허가를 내주면 맥주공장도 지을 용의가 있음을 흘렸으나, 이는 경북, 충북 등 타지역의 반발이 거세지자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 분위기다.
이밖에 정부 고위관계자는 <한경>과 인터뷰에서 "세종시의 자족 기능을 조기에 확보하기 위해 고용 창출과 인구 유입 효과가 큰 삼성, LG의 대규모 사업장이 들어와야 한다"며 노골적으로 대그룹 이름까지 거명하며 압박하고 있다. 잔챙이 기업 몇개 갖고는 여론 흐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초조감이 읽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그룹들은 "기업은 손해보는 장사를 할 수 없다"며 정부가 먼저 '조건'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부응해 파격적 가격의 대지 공급 외에 '원형지 개발권' 부여 등의 추가특혜를 흘리기 시작했다.
이처럼 기업·대학 유치에 총력전을 펴면서 이 대통령은 이달말 대국민과의 대화 형식을 빌어 세종시 수정의 불가피성을 설명할 예정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초 청와대는 "이 대통령은 세종시를 명품도시로 만들겠다고 했지, 원안대로 한다는 약속을 한 적이 없다"며 대국민 사과를 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으나, 이에 대한 비난여론이 들끓자 '유감'을 표명하는 선으로 방향을 바꾼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어 정운찬 총리도 당초 내달 15일께 발표하려던 세종시 수정안 발표를 최대한 앞당기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발표할 수정안에는 세종시로 내려갈 기업·대학들의 실명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진다.
정부는 이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쳐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세종시 수정법을 통과시키겠다는 계획이다. 내년 지방선거 등을 고려할 때, 길게 끌어봤자 득될 게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셈이다.
처음부터 번지수 잘못 찾은 세종시 해법
세종시 논란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는 좀더 지켜볼 일이다. 청와대와 정부가 말 그대로 사활을 걸고 동분서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심각한 후폭풍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 예로 지금 이미 조성이 끝난 전국의 공단의 입주율은 60%에 불과하다. 40%는 텅텅 비어있다는 얘기다. 여기에다가 전국적으로 무더기 공단조성이 진행중이다. 경기도의 경우 15개의 기존공단외에 무려 44개의 공단을 추진중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공단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급속히 악화될 것이란 의미다. 이런 마당에 세종시에 각종 특혜를 통해 기업들을 유치하면 타지역의 반발은 불을 보듯 훤하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해법찾기에 부심중인 세종시 퍼즐은 처음부터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지금 정부가 고민해야 할 최대 과제는 세종시에 어떤 기업들을 끌고 들어갈 것인지가 아니라, 전국에 텅텅 빈 공단에 어떻게 기업들이 입주하도록 할 것인가가 먼저여야 마땅했다. 즉 앞으로 5년, 10년후 한국을 먹여살릴 '리딩 인더스트리(선도산업)'를 찾는 게 관건이라는 얘기다.
그렇지 않고 땅값, 세금, 재정 등의 제살 깎아먹기식 특혜로 기업들을 끌어들이려 한다면, 이는 전형적 발등의 불끄기에 불과할 뿐이라는 데 지금 정부가 마련중인 '세종시 해법'의 심각한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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