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동유럽의 "살려달라" 싸늘한 외면
<분석> '동유럽 디폴트 도미노', 점점 눈앞 현실로 다가와
3월1일 오후, 브뤼셀에서는 27개국 EU(유럽연합) 정상들이 참여하는 EU특별정상회담이 열린다. 동유럽 금융위기 타개책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에 앞서 당일 아침 9개국 동유럽 정상들은 별도 회담을 갖고 서유럽에 지원을 호소할 예정이다. 체코의 미레 토롤라네크 총리는 앞서 EU에 보낸 서한을 통해 "우리는 지금 예측불허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서유럽의 지원을 읍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유럽 반응은 냉랭하다. EU 유럽위원회의 토레스 대변인은 27일(현지시간) 브뤼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내가 아는 한 비(非)유로 가맹국에 대한 추가 긴급융자에 대한 협의는 없을 것"이라고 끊어말했다.
EU는 지난해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긴급융자 한도를 종전의 120억유로에서 250억유로(316억9천만달러)로 늘려준 바 있으며, 이를 통해 헝가리와 라트비아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더이상 지원을 해줄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한 셈.
그는 루마니아가 지원을 요청한 것과 관련해서도, 루마니아와 EU 당국자간에 그런 얘기가 오갔음을 인정하면서도 "정식요청은 없었다"며 거듭 지원할 생각이 없음을 확인했다.
대신 EU가 내놓은 카드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유럽투자은행(EIB), 세계은행이 향후 2년간 동유럽 은행들에 245억유로(311억달러)를 지원하겠다는 안이었다. EBRD가 60억유로, EIB는 110억유로, 세계은행이 75억유로를 지원하겠다는 것. 하지만 이는 헝가리의 페렌크 듀르차니 총리가 EU에 요청한 동유럽 지원금 1천800억유로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서유럽이 이처럼 동유럽의 SOS를 외면하는 것은 지금 제 코가 석자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서유럽국가들은 2차 세계대공황에 준하는 위기로 영국-아일랜드 디폴트설이 나돌고 스페인-포르투갈-그리스 등이 휘청대는 등 멀쩡한 나라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극한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다보니 동유럽이 붕괴하면 서유럽에도 엄청난 쓰나미가 몰아닥칠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각자 이해관계가 상충돼 일치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16개 유로존 가입국가들의 은행들은 동유럽에 1조2천500억달러를 빌려주고 있다. 특히 오스트리아와 스웨덴이 많은 돈을 빌려줬다. 한 예로 오스트리아 은행들이 동유럽에 빌려준 돈은 2천300억유로로, 무려 오스트리아 GDP의 80%에 달하고 있다. 동유럽에서 디폴트 도미노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오스트리아부터 휘청댈 판이다.
더 큰 문제는 동유럽의 무수익여신(NPL) 비율이 지난해 8%로 급등한 데 이어 국제신용평가사 S&P는 이 비율이 25%까지 폭등할 것으로 전망하는 등, 동유럽이 사실상 디폴트 국면에 진입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서유럽은 동유럽 지원의 몫을 IMF에게 떠넘기며 차갑게 등을 돌리고 있다. 동유럽국가들이 서유럽의 이기주의, 보호주의를 연일 성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4일 동유럽 디폴트 위기를 다루며 이런 묘사를 했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자 동유럽 국가들은 환호하며 아메리칸 스타일을 추구했고, 서방은행들은 앞 다투어 돈을 빌려줬다. 모두가 전성시대를 구가하는 듯싶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서방은행들이 돈을 갚으라는 청구서를 내밀었다. 그 순간 모든 게 끝났다.”
동유럽 디폴트 위기가 점점 눈앞 현실로 다가오는 양상이다. 동유럽 디폴트가 현실로 나타날 경우 2차 세계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우리나라도 서방의 자금회수에 따른 금융위기 심화, 대유럽 수출 급감, 동유럽 수출대금 미수 등 각종 후폭풍에 시달릴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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