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주가 '관치 방어', 언제까지...
사흘새 외환보유고 55억달러 소진, '고요속 불안' 확산
외형적 숫자만 보면, 한국은 5일 세계 금융시장에서 가장 안전했고 한국은 가장 우량국가였다. 문제는 그러나 이같은 숫자가 '관치(官治)'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5일 원-달러 환율은 장중 1,000원 선과 1,140원 선을 오가며 말 그대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이날 환율은 전날 종가 수준인 1,129.00원으로 거래를 시작하더니 미국 달러 초강세 소식 및 외국인들의 주식 대거 매도 소식에 1,142.80원까지 급등했다. 그러자 외환당국이 즉각 개입했다. 개입후 환율은 1,009.90원까지 폭락했다. 그러나 장 막판에 수입업체들의 거센 달러화 매수세가 대거 유입되자 마감 전 25분 동안에 환율이 18원이나 급등하면서 1,117원 선으로 급상승했다. 결국 이날 환율은 전날보다 11.20원 떨어진 1,117.8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날 정부의 개입 규모는 20억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3일의 25억달러, 4일의 10억달러에 이어 사흘동안에만 총 55억달러의 외환보유고가 시장에 풀린 셈이다.
정부는 55억달러로 이틀간 환율을 30원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이날 막판 25분동안에 18원이나 폭등한 데서 볼 수 있듯, 시장이 정부개입으로 환율이 정상을 되찾으며 안정됐다고 절대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과연 외환당국이 언제까지 외환보유고를 축내면서 환율 방어를 할 수 있을지, 시장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시장 일각에서는 시장 개입으로 외환보유고가 급감할 경우 정말 무시무시한 규모의 핫머니 등 해외 환투기 세력의 공세가 전개되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기까지 하다.
이날 주가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22.05포인트(1.55%) 내린 1,404.38로 장을 마감했다. 전날 미국주가가 3% 폭락한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선방이다. 아시아에서도 가장 좋은 성적이다. 중국의 상하이종합지수는 3.29%, 선전성분지수는 2.8%, B주지수는 2.67% 하락했다. 홍콩 항셍지수도 2.95% 급락했고, H지수는 3.32% 폭락했다. 도쿄 닛케이평균주가 역시 2.75%, 토픽스지수는 2.56% 급락했고, 대만 가권지수도 1.64% 하락했다.
문제는 이같은 주가 선방이 시장 자력에 의한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미국 주가 폭락 소식에 전날보다 32.04포인트(2.25%) 급락한 1,394.39로 출발하며 1,400선이 붕괴됐다. 외국인들은 이날도 14거래일째 순매도 행진을 했다. 순매도액도 2천426억원로 만만치 않았다. 개인과 국민연금 등 기관만 각각 1천27억원, 892억원을 순매수했다.
현재 정부는 일단 '9월 외환위기설'의 분깃점이 될 오는 11일까지 환율과 주가를 결사 방어한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외국인 보유채권 67억달러의 대부분 만기가 11일이기 때문이다. 이때 대부분의 외국인 돈이 재투자된다면 시장 불안은 일거에 사라지고 시장이 제자리를 찾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판단은 지금의 금융위기가 단순한 '외환 위기설' 때문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내외 시장에서 한국경제의 심각한 불안요인으로 '관치 부활', '오락가락 경제정책' 등을 꼽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인위적 시장 개입이 계속된다면 이런 의구심은 더욱 증폭되고, 시장은 더욱 불안해질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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