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월가 사냥' 부채질
금감위의 '산은의 리먼 인수 반대'에도 계속 "절호의 찬스" 주장
김기훈 "요즘 같은 가격으로 세계 일류 인수할 기회 자주 안와"
김기훈 경제부 차장대우는 27일자 <조선일보>에 쓴 '월스트리트 울리고 웃긴 산은'이란 칼럼을 통해 국내 한 시중은행 임원의 말을 빌어 "지분 50%를 인수하는 데 7조~8조원이 든다"며 "HSBC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데 필요한 자금(6조원)에 비추어 보면 '헐값 인수'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칼럼은 "리먼 인수는 위험과 기회가 팽팽한 초대형 빅딜(Big Deal)"이라며 "인수 후 숨겨진 부실을 떨기 위해 막대한 추가자금이 필요하고, 한국계 은행으로 이미지가 각인되면 미국계 고객과 직원이 이탈할 수 있다"고 위험성을 지적했다. 칼럼은 그러나 이어 "하지만 인수 후 경영정상화에 성공하면 전리품은 엄청나다"며 "서울과 월스트리트를 직접 연결하는 '금융고속도로'가 생긴다. 그러면 한국 금융기관들의 눈높이가 일제히 월스트리트 수준으로 높아지면서 말로만 외치던 금융세계화의 문이 열릴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도 하지 못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칼럼은 "한국은 지난 1월에 한국투자공사(KIC)가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인 메릴린치에 투자한 것을 계기로 세계금융의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메릴린치 인수 후 주가가 하락하면서 공과(功過) 논란이 있지만, 최종 평가는 미국 경기가 회복된 수년 뒤에야 가능하다. 그만큼 메릴린치·리먼과 같은 초대형 빅딜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투자자의 결단을 필요로 한다"며 "만년 금융 후진국인 우리가 요즘과 같은 가격에 세계 일류를 인수할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리먼의 위험만큼 기회가 커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라며 리먼 인수에 적극적 찬성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메릴린치에 투자했던 한국투자공사가 최근 주가가 반토막나자 "다시는 월가 은행 지분 매입에 나서지 않겠다"고 사실상 투자 실패를 시인한 대목은 거론하지 않았다.
송희영 "깡통 차더라도 수업료 치루는 셈"
이에 앞서 지난 8일에는 송희영 논설실장이 '누가 월 스트리트를 두려워하랴'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같은 주장을 편 바 있다.
송희영 실장은 "나라 안에서는 경기 회복의 실마리를 찾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좁은 반도 안에서 서로를 타박하며 싸울 바에야 과감하게 넓은 바깥세상으로 눈을 돌려봐야 한다"며 "어쩌면 경기침체·인플레·금융위기라는 악성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돌고 있을 때야말로 한국 경제가 해외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는 "100년래 최악의 금융 지옥이라는 월 스트리트부터 한번 둘러보자. 베어 스턴스라는 대형 증권회사가 맥없이 무너진 후 메릴린치증권, 리만 브러더스를 비롯, 중소형 은행과 증권회사, 보험회사의 몸값이 뚝 떨어졌다"며 "이 중에는 전 세계 영업망을 갖추고 고급 인재를 거느린 브랜드이지만 떨이 상품으로 전락한 곳도 있다. 외환은행 사는 값으로 월 스트리트의 대형 증권사를 살 수 있을 지경이다. 잘 고르면 몇 년 후 엄청난 수익을 거둘 만한 물건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제조업과 수출로 중진국이 된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하려면 적어도 금융업만큼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춰야만 한다"며 "바로 이런 중대한 길목에서 우리는 세계 일류 브랜드를 손에 넣은 후, 단번에 몇 단계 뛰어올라갈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월 스트리트뿐만 아니라, 런던·프랑크푸르트·스위스·프랑스에서도 적지 않은 금융 회사들이 경영난에 허덕이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가다 보면 국제 사기꾼에게 속아 수천억원을 날리는 바보도 나올 것이고, 잘 투자했다가도 시장이 나빠져 깡통 차는 사례도 발생할 것이다. 이런 희생은 피할 수 없을 것이고, 수업료를 치르는 셈 쳐야 한다"며 "한국인들 머릿속에는 '빼앗기고, 당하고, 먹혔다'는 피해자 의식이 깊게 자리잡고 있다. '만날 당한다'는 열등감을 극복하려면 우리도 해외 투자에서 성공 샘플을 하나 둘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정부가 외국 금융회사 M&A(인수합병)에 일일이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간자금이면 몰라도 국민 돈 갖고는 안될 일"
<조선일보>의 잇따른 '월가 사냥' 부채질은 지금이야말로 월가의 내로라하는 금융기관을 인수할 절호의 기회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나름대로 근거를 갖고 있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며칠 전 전광우 금융감독위원장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위험한 리먼 인수에 나서선 안된다"는 원칙을 분명히 밝혔듯, <조선일보> 주장은 어디까지나 민간자본의 영역에 국한돼야 한다는 지적이 금융계의 일반적 지적이다. 한국투자공사의 메릴린치 투자 실패에서 볼 수 있듯, 국민 돈을 위험한 투기판에 넣어 부실을 초래할 경우 엄청난 비판에 직면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국민연금으로 월가 금융기관을 인수하겠다는 박해춘 국민연금이사장이나, 산업은행의 리먼 인수 협상은 바람직하지 않겠다는 게 시장의 지배적 평가다.
만약 민간 시중은행 등이 나름의 판단에 따라 주주들의 동의하에 월가 금융기관 인수에 나서면 모를 일이나, 안전성이 무엇보다 최우선인 국민돈을 함부로 위험에 내몰아선 안된다는 지적인 셈.
며칠 전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조선일보>에 '금융자본주의의 실패를 지켜보며'라는 칼럼을 기고한 바 있다. 장하준 교수는 칼럼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세계 금융 위기는 1929년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금융 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라며 작금의 심각한 금융위기 상황을 전했다.
장 교수는 "이렇게 세계 금융이 붕괴하는 상황에서 특히 10년 전 잘못된 금융자유화와 개방으로 외환 위기를 겪어 그 후유증으로 경제가 멍이 든 나라에서 지레 제조업을 포기하고 금융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노무현 정부의 '금융허브론'과 그를 계승한 이명박 정부의 '금융중심지론'이 걱정스럽게 들리는 것은 필자의 노파심일까"라고 반문했다.
월가 사냥을 부추기는 <조선일보>의 경제 논객들이 한번 꼽씹어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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