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 설립자 장손의 박근혜 검증 기자회견 전문]
"대구대,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 영남대로 강제 통합"
영남대로 통합하기 전 대구대를 설립한 최준 이사장의 장손 최염 씨가 26일 오전 10시 30분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검증 기자회견을 열었다. 다음은 최씨의 기자회견 전문.<편집자주>
<박근혜와 영남대학교 관련 기자회견>
본인 최염은 대구대학 설립자 최준의 장손자로 1967년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의 강제합병으로 탄생된 영남대학교 설립과정을 직접 목격한 유일한 사람입니다.
지난 6월 20일 한나라당 국민검증위원회에 관련 자료를 접수하고, 검증위의 결과를 기다리고자 하였으나, 박근혜 예비후보가 아무런 반성과 참회의 태도를 보이지 않고, 적반하장으로 과거 검찰과 국세청 등의 조사를 내세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대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박근혜 자신이 1980년부터 1989년까지 이사로 재직하던 중인 1981년 영남학원 정관을 변경하여 박정희를 소위 “교주”로 하는 내용의 문구를 삽입하는 등 재단 운영에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전횡을 일삼았음에도 일말의 책임도 느끼지 않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의 딸인 박근혜는 한푼의 돈도 들이지 않고 강제 매입한 교지를 한국조폐공사 경산공장에 매각한 막대한 차익으로 영남학원을 건설하여 “교주”가 되고, 이사장과 이사 노릇을 하였습니다. 부동산 투기의 효시는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었습니다. 또한 본인의 조부 최준께서 학교재산으로 출연한 울주군 일대와 선산인 경주시 일대의 수만 평이 헐값으로 매도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정확한 매각금액과 사용처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의 수많은 의혹들이 해소되지 않은 채 묻혀져가고 있습니다.
당시 수 십 억원(현 시세 수백-수천억원)에 달하는 매각대금이 어디로 갔는지, 그때 실질적인 재단운영자였던 박근혜가 밝혀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억압된 군사정권하에서 묻혀진 역사의 진실을 당사자인 박근혜가 국민 앞에 명백히 알려야 합니다. 저의 조부님은 한국 현대사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산 증인으로 거론되곤 하는 경주 최부자 집의 마지막 분이십니다. 온 재산을 나라의 독립과 이웃사랑 그리고 후학 양성에 사심 없이 바치셨던 분이십니다. 저는 이런 조부님을 늘 존경해 왔습니다.
한나라당 검증위원회의 철저한 조사와 박근혜의 진실된 고백을 요구합니다. 그래야 억울한 일을 당하셨던 조부님도 하늘에서 편히 눈을 감으실 것이고, 본인 또한 후손으로서 약간의 면책이 될 것이며, 나아가 이 나라의 정의와 원칙이 바로 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본인의 이러한 마음을 헤아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협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07년 6월 26일
최 염
<박근혜 대통령 예비후보의 영남대학교 관련 기자회견>
회견주체 : 최염 (대구대학 설립자 최준의 장손자)
한나라당 국민검증위원회는 지난 6월 22일 박근혜 예비후보와 관련된 정수장학회, 이명박 예비후보와 관련된 위장전입 의혹에 관해 모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오래 전의 일이라 정확한 진상을 규명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냥 묻고 지나칠 수 없는 중대한 사안임에도 쉽게 넘어가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본인이 오늘 기자회견에서 발표하고자 하는 대구대학의 영남대학교로 통합과정은 지난 세월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강탈사건임에도 소위 교주의 딸인 박근혜 예비후보는 사과는커녕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과 국정원이 샅샅이 뒤져도 아무 것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잘못한 것이) 있었으면 역대 정권에서 벌써 법적으로 문제가 됐을 것이다. 허무맹랑한 것 가지고 모함하고, 공식적으로 밝혀졌는데 또 모함한다.” 는 등 일말의 책임도, 반성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에 의해 대구대학이 강탈된 지 40년이 되었습니다. 박정희 정권과 뒤를 이은 전두환, 노태우 정권, 그 서슬이 시퍼렇던 군사독재정권 시절 어느 누가 그 억울함을 어느 곳에 하소연 할 수 있었겠습니까? 어느 검찰이나 국세청이 그들의 뜻과 다른 수사나 조사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박정희 정권에 의해 피해를 입고 고통 속에 살아가는 무수한 사람들이 아직 생존해 있음에도 저렇게 뻔뻔하게 아무 잘못이 없다, 모함한다고 하는 것은 국가를 경영하려는 대통령 예비후보로서의 자세가 아닙니다. 일흔 다섯인 본인이 어떤 영화를 누리겠다고,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이 노구를 이끌고 난생처음으로 이런 기자회견을 하겠습니까?
자신과 그 부친의 잘못이나 억압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예의와 반성, 사과가 있었다면 오늘 본인은 이 자리에 서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과오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가 미래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대통령 예비후보 등록을 취소하고, 자신과 부친의 잘못에 대해 평생 참회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 것입니다.
(최 염 약 력)
1933년 경북 경주시 교동 69번지 출생
1956년 현 영남대학교 전신인 대구대학 경제학과 4년 졸업
1958년 심계원 재직
1960년 4.19혁명 이후 대구대학 재단 재직
1963년 이후 약 3년간 대구대학 재단 상무이사 재직
현재 경주최씨 중앙종친회 명예회장, 성균관 고문
본인 최염은 1947년 9월 22일 영남대학교 전신인 대구대학을 설립한 최준의 장손자로서 다년간 대구대학의 재단에서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주지하듯이, 현재의 영남대학교는 본인의 조부인 최준이 설립한 대구대학과 최해청이 설립한 청구대학이 1967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주도로 통합되어 설립된 학교입니다. 통합 당시 영남대학교의 탄생과정을 직접 목격한 유일한 사람으로서 통합과정을 다음과 같이 기억합니다.
대구대학의 영남대학교로 강제 통합
본인은 1967년 반도호텔 924호에서 열린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의 합동이사회에 본인의 조부이자 대구대학의 설립자인 최준을 모시고 참석해서 영남대학교가 출범하게 된 장면을 직접 자세히 목격했습니다. 조부께서는 좀 더 나은 학교의 발전을 위해서 당시 삼성의 이병철 회장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잘 운영하라고 대구대학의 재단을 넘긴 바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이병철 회장이 일언반구의 협의도 없이 대구대학을 포기하고 영남대학의 설립에 동의한다고 하여,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조부께서는 당시 대구대학 이사장인 이병철을 불러오라 하였으나 실현되지 못했고, 그 후 합동이사회의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기에 중도에 퇴장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으로 영남대학교가 탄생된 것입니다.
박정희의 주변 인물들로 이사진이 포진된 청구대학과 이병철이 재단이사장으로 있던 대구대학이 영남대학교로 통합된 것은 박정희의 막강한 힘으로 보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병철이 대구대학을 아무런 조건 없이 운영권을 넘겨준 본인의 조부와 그 어떤 상의도 없이 박정희 정권에게 헌납한 것도 박정희의 힘 앞에 생존을 위해 무릎을 꿇은 것이라는 지적도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 후 학교법인 영남학원은 나의 조부를 몇 년간 이사로 등재시켰다가, 법인을 독점하기 위해 어느 날 아무런 기별도 없이 퇴임시키는 전횡을 일삼았습니다.
돈 한 푼도 안내고 영남대학교의 실질적 주인이 된 박정희는 10.26사태로 죽고, 전두환의 권력이 맹위를 떨치는 1980년 학교법인 영남학원 이사장에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취임하였습니다. 박근혜는 그 후 1989년까지 이사로 재직하였고, 1988년 국회 국정감사를 받을 때는 조일문 전 건국대 총장이 이사장 자리에 있었습니다.
영남학원 교주 박정희 선생, 박근혜 당시 이사장 작품
별첨하는 학교법인 영남학원 정관과 1988년 국회 국정감사 사본에서 알 수 있듯이, 정관 제1조(목적)는 “이 법인이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교주 박정희 선생의 창학 정신에 입각하여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입니다.
박정희 사후 1981년 당시 이사진 7명 중 박근혜, 한준우(정수장학회 이사), 신기수(정수장학회∙육영재단 이사), 유연상(육영수 여사 조카사위∙육영재단 이사), 류준(당시 이사장∙육영재단 이사) 등에 의해 정관 1조에 그간 없었던 교주라는 문구가 삽입이 된 채로 정관 변경이 되어 문교부로부터 승인을 받았고, 현재까지도 유효한 조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작고한 김동영 의원과 박관용 의원 등의 질의와 조일문 이사장 및 권혁기 총장 서리의 답변을 보면, “교주라는 표현은 사실상 법적인 것은 아니고 왜 교주라는 표현을 정관에 넣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조일문 이사장)라고 말하면서, 조일문 이사장도 “교주라는 표현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대명천지에 지금도 “교주 박정희 선생”이란 말이 가능할 수 있습니까.
나아가 소위 교주인 박정희가 재단에 출연한 자금의 액수에 대해 조일문 이사장은 “문서상 나타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답하고, 1980년 이사장을 지내고 1988년 국감 당시 재단 이사로 재직 중인 박근혜가 출연한 액수에 대해서도 묻자, “그것도 나타나 있는 것이 없습니다”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돈 한푼도 출연하지 않고 지금까지 교주 노릇을 하고 있는 박정희, 역시 돈 한 푼 내지 않고 재단 이사장과 이사노릇을 버젓이 했던 박근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이런 것이 항상 원칙을 강조하는 박근혜의 원칙이란 말입니까.
부동산투기의 효시, 대학교 부지 매각
박정희는 또한 자기 돈은 한 푼도 안들이고 경산군 압량면 일대 105만 여 평의 교지를 매수하면서 매매협의가 안되고 있는 땅을 군수와 경찰서장을 동원하여 강제로 매입하였다는 소문이 자자하였는데, 땅의 매수가격이 얼마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더욱 놀랄 일은 그 땅 가운데 일부인 십 여 만평을 1974, 5년 경 한국조폐공사 경산공장 부지로 매각했다고 하는데, 그 매도가격이 얼마였는지에 대해서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이 작금의 망국적인 부동산 투기의 효시일 것입니다.
최근에도 당시 억울하게 빼앗긴 구지주들이 현우동 영남대학교 총장을 찾아와 그 때 억울하게 빼앗기지 않았다면 우리는 얼마나 큰 부자가 되었을 터인데 하면서, 광활한 학교부지를 자기들에게 경작이라도 하도록 해달라는 청원이 자주 있다고 합니다.
돈도 한 푼도 안들이고 대통령의 직권을 남용한 투기로 얻은 막대한 차익으로 바로 오늘날 영남대학교가 건립되었다는 것, 그의 딸이 재단 이사장과 이사 노릇을 하였다는 것은 앞으로 분명하게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박근혜가 박정희 사후 세계의 자유국가 어디에도 없을 “교주”라는 기상천외한 정관을 만들었다는 것은 만인이 공노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이러한 정관을 승인한 당시 교육당국의 처사도 비난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헐값에 매도된 선산들, 매도액은 어디로?
또한 경남 울주군 두동면 구미리 산 224(28,530평, 91년 공시지가 3,300원, 계 9,415만원), 220(75,300평, 91년 공시지가 29,370원, 계 22억 1,156만원) 소재 본인의 조부님이 기부한 땅 10만 여 평을 1988년 1월 11일 학교법인 영남학원이 매도한 적이 있습니다. 200여년 전에 모신 본인의 조상 묘 3위가 계시는 이 땅은 감정가액이 4,700만원, 매도금액이 7,690만원으로 평당 760원 정도로 매각되었습니다.
김동영 의원이 질의에서 이 땅이 적어도 평당 5만원 이상은 된다고 했지만, 본인은 그 이상 된다고 확신했고, 또 선산분묘가 계시는 그 땅을 되찾는 것이 후손의 도리라 생각되어 대구대학 재단 사무장을 지낸 최정(9촌 숙)을 대동하고 당시 이사장인 조일문을 서울 마포구 상수동 소재 자택으로 방문했습니다. 거기서 본인은 아직 매매계약이 안된 상태이니 매매 계약 진행을 중단하고 7,690만원의 두 배라도 지불할테니 본인과 계약할 것을 제안하였지만, 조일문은 구두약속도 계약이라는 이유로 다음날 갑자기 계약을 해버렸습니다.
여기에 여당 울산지역 국회의원이자 민정당 사무차장이었던 김태호가 개입되어 그렇게 헐값으로 매도했다는 지적도 있으나, 집권당 사무차장인 일개 국회의원의 전화 한마디로 당시 막강한 권력의 비호를 받고 있는 박근혜가 순순히 매도한 것이 아니라 재단의 실질적 운영자인 재단이사 박근혜와 그 측근들이 매도가격의 몇 배가 되는 금액을 매수자로부터 별도로 받기로 했기에 본인과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고 본인은 굳게 믿고 있습니다. 나아가 박정희 유물관을 지을 경비를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문교부에 이 땅의 매도 승인 신청을 제출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또한 본인의 7대 조모님 산소가 위치한 경주시 구정동 산 39번지 임야 10,920평 및 산 43번지 임야 1,920평도 매각(1990년 공시지가 평당 180,000원, 계 23억 1,120만원)되었는데, 본인의 7대 조모님 산소가 위치한 이 땅은 그 일대가 온천지구로 고시되어 100억원 이상의 시세가 형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거의 거저인 단돈 4억원에 차모씨에게 매도되었습니다. 나중에 차모씨를 추궁한 결과 매매대금은 11억원인데 세금이 많이 나와 계약서 상에는 4억원으로 기재하고 7억원은 별도로 지불했다는 것입니다.
본인의 조부님이 기부한 땅이 매도된 1988년은 박근혜와 그의 측근들이 재단이사로 재직하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학교 재단의 이런 행태는 법적으로 또 도의적으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것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이 땅의 매도 금액이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도 전혀 분명치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문도 소상히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
1988년 국정감사가 있은 후 박근혜는 국감의 지적에 정곡을 찔렸는지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진 전체의 사표를 제출케 하고, 6-7 트럭 분의 박정희 유품과 서류 등을 싣고 학교 당국도 모르게 야간도주하듯 영남대학교를 떠난 후 오늘날까지 아무런 반성이나 사죄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본인의 주변 법조인이나 친지들은 왜 그 당시의 이러한 불법 행위를 고발하지 않고 있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곤 했습니다. 본인은 그 당시가 박정희 정권을 이은 전두환, 노태우 정권 이라는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박근혜는 직접 행동하지 않았다든지 하는 등으로 형사 처벌이 유예되거나 성립되지 않을 가능성이 엿보였기에 잘못하면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또 법적 책임은 그 죄목에 따라 시효기간이 다르지만, 도덕적 책임은 시효가 없다는 본인의 평소 소신에 따라 고발하지 않았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본인의 조부님이 민족 교육을 위해 사재를 털어 설립한 대구대학을 강제로 탈취한 박정희 정권의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작태, 영남학원에 한 푼의 돈도 기부하지 않은 채 버젓이 재단 이사장과 이사 노릇을 한 박근혜의 뻔뻔스러움, 순수하고 투명해야 할 교육기관 영남학원에서 벌어졌던 여러 불투명성을 밝히는 데에 온힘을 다 바칠 것입니다.
본인은 한나라 당원이 아닙니다. 당원도 아닌 사람이 남의 경선에 왈가불가 하는 모습이 좋지 않아 검증신청을 하지 않을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대통령을 하겠다는 박근혜가 일개 대학운영을 불법투성이로 자행하고 법에도 없는 교주 운운하며 귀중한 재단 재산을 헌신짝 같이 투매하여 박정희가 특혜로 인가해준 영남투자금융까지 운영부실로 IMF로 인해 퇴출케한 원인을 조성하고, 오늘날 학교 법인 영남학원의 재산을 300년 내려온 경주의 가대(家垈) 밖에는 없도록 만든 책임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면책될 수 없다고 본인은 생각합니다.
본인의 조부님은 한국 현대사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산 증인으로 지목되곤 하는 경주 최부자 집의 마지막 분이십니다. 온 재산을 나라의 독립과 이웃사랑 그리고 후학 양성에 사심 없이 바치셨던 분이십니다. 저는 이런 조부님을 늘 존경해 왔습니다. 한나라당 검증 위원회의 철저한 조사와 박근혜의 진실된 고백을 요구합니다. 그래야 억울한 일을 당하셨던 조부님도 하늘에서 편히 눈을 감으실 것이고, 본인 또한 후손으로서 약간의 면책을 받을 것이며, 나아가 이 나라의 정의와 원칙이 바로 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본인의 이런 마음을 헤아려서 많은 분들의 관심과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7년 6월 26일
최 염 (崔 炎)
학교법인영남학원 정관
법 인 이 사 회 통과일자 : 2007. 2.27.
교육인적자원부 인가일자 : 2007. 3. 12.
제 1 장 총 칙
제 1조(목적) 이 법인은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교주 박정희 선생의 창학정신에 입각하여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 2조(명칭) 이 법인은 학교법인 영남학원(이하 “법인”이라 한다)이라 한다.
제 3조(설치학교) 이 법인은 제1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음 각 호의 학교를 설치 경영한다.
1. 영남대학교
2. 영남전문대학(교명은 영남이공대학 이라 한다)
제 4조(주소) 이 법인의 사무소는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317의 1번지에 둔다.
제 5조(정관의 변경) 이 법인의 정관의 변경은 이사 정수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에 의한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제 2 장 자산과 회계
제 1 절 자 산
제 6조(자산의 구분) ① 이 법인의 자산은 기본재산과 보통재산으로 구분하되, 기본재산은 교육용 기본재산과 수익용 기본재산으로 구분하여 관리한다.
② 기본재산은 별지 목록의 재산과 제11조의 규정에 의한 적립금 및 기타 이사회의 의결에 의하여 기본재산으로 정하는 재산으로 한다.
③ 보통재산은 제2항에서 정하는 이외의 재산으로 한다.
제 7조(재산의 관리) ① 제6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한 기본재산을 매도, 증여, 교환 또는 용도를 변경하거나 담보에 제공하고자 할 때에는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관할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② 기본재산과 보통재산의 운영과 관리에 관하여는 법령과 이 정관에 특별히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사회에서 따로 정한다.
제 8조(경비와 유지방법) 이 법인의 경비는 기본재산에서 나는 과실과 수익사업의 수익과 기타의 수입으로 충당한다.
영남학원 설립당시 임원
이사장(임기 4년) 이동녕 4대 민의원 / 6-7대 국회의원
<이 사 명단>
-이효상(임기 4년) 공화당 총재 / 5선 의원, 국회의장(6-7대)
* 아들 이문조(영남대 교수)
-김성곤(임기 4년) 4대 민의원 / 6,7,8대 국회의원, 공화당 재정위원장, 공화당 중앙위의장
-성상영(임기 4년)
-이후락(임기 4년) 10대 국회의원 / 6대 중앙정보부 부장 / 3대 대통령 비서실 실장
-최 준(임기 4년) 대구대학 설립자
-한석동(임기 4년)
-신현확(임기 2년) 부흥부 장관 / 보건사회부 장관 /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 국무총리직 수행 / 9-10대 국회의원
-서정귀(임기 2년)
-백남억(임기 2년) 공화당 정책위의장, 당의장 / 6,7,8,9대 국회의원
-신기석(임기 2년) 9대 국회의원 / 공화당 국토통일위원장, 헌법개정심의위원
-여상원(임기 2년)
-김 인(임기 2년) 8대 국회의원 / 경북도지사
<감 사 명단>
-오일룡(임기 2년)
-이상근(임기 1년)
<박근혜와 영남대학교 관련 기자회견>
본인 최염은 대구대학 설립자 최준의 장손자로 1967년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의 강제합병으로 탄생된 영남대학교 설립과정을 직접 목격한 유일한 사람입니다.
지난 6월 20일 한나라당 국민검증위원회에 관련 자료를 접수하고, 검증위의 결과를 기다리고자 하였으나, 박근혜 예비후보가 아무런 반성과 참회의 태도를 보이지 않고, 적반하장으로 과거 검찰과 국세청 등의 조사를 내세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대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박근혜 자신이 1980년부터 1989년까지 이사로 재직하던 중인 1981년 영남학원 정관을 변경하여 박정희를 소위 “교주”로 하는 내용의 문구를 삽입하는 등 재단 운영에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전횡을 일삼았음에도 일말의 책임도 느끼지 않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의 딸인 박근혜는 한푼의 돈도 들이지 않고 강제 매입한 교지를 한국조폐공사 경산공장에 매각한 막대한 차익으로 영남학원을 건설하여 “교주”가 되고, 이사장과 이사 노릇을 하였습니다. 부동산 투기의 효시는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었습니다. 또한 본인의 조부 최준께서 학교재산으로 출연한 울주군 일대와 선산인 경주시 일대의 수만 평이 헐값으로 매도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정확한 매각금액과 사용처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의 수많은 의혹들이 해소되지 않은 채 묻혀져가고 있습니다.
당시 수 십 억원(현 시세 수백-수천억원)에 달하는 매각대금이 어디로 갔는지, 그때 실질적인 재단운영자였던 박근혜가 밝혀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억압된 군사정권하에서 묻혀진 역사의 진실을 당사자인 박근혜가 국민 앞에 명백히 알려야 합니다. 저의 조부님은 한국 현대사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산 증인으로 거론되곤 하는 경주 최부자 집의 마지막 분이십니다. 온 재산을 나라의 독립과 이웃사랑 그리고 후학 양성에 사심 없이 바치셨던 분이십니다. 저는 이런 조부님을 늘 존경해 왔습니다.
한나라당 검증위원회의 철저한 조사와 박근혜의 진실된 고백을 요구합니다. 그래야 억울한 일을 당하셨던 조부님도 하늘에서 편히 눈을 감으실 것이고, 본인 또한 후손으로서 약간의 면책이 될 것이며, 나아가 이 나라의 정의와 원칙이 바로 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본인의 이러한 마음을 헤아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협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07년 6월 26일
최 염
<박근혜 대통령 예비후보의 영남대학교 관련 기자회견>
회견주체 : 최염 (대구대학 설립자 최준의 장손자)
한나라당 국민검증위원회는 지난 6월 22일 박근혜 예비후보와 관련된 정수장학회, 이명박 예비후보와 관련된 위장전입 의혹에 관해 모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오래 전의 일이라 정확한 진상을 규명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냥 묻고 지나칠 수 없는 중대한 사안임에도 쉽게 넘어가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본인이 오늘 기자회견에서 발표하고자 하는 대구대학의 영남대학교로 통합과정은 지난 세월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강탈사건임에도 소위 교주의 딸인 박근혜 예비후보는 사과는커녕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과 국정원이 샅샅이 뒤져도 아무 것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잘못한 것이) 있었으면 역대 정권에서 벌써 법적으로 문제가 됐을 것이다. 허무맹랑한 것 가지고 모함하고, 공식적으로 밝혀졌는데 또 모함한다.” 는 등 일말의 책임도, 반성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에 의해 대구대학이 강탈된 지 40년이 되었습니다. 박정희 정권과 뒤를 이은 전두환, 노태우 정권, 그 서슬이 시퍼렇던 군사독재정권 시절 어느 누가 그 억울함을 어느 곳에 하소연 할 수 있었겠습니까? 어느 검찰이나 국세청이 그들의 뜻과 다른 수사나 조사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박정희 정권에 의해 피해를 입고 고통 속에 살아가는 무수한 사람들이 아직 생존해 있음에도 저렇게 뻔뻔하게 아무 잘못이 없다, 모함한다고 하는 것은 국가를 경영하려는 대통령 예비후보로서의 자세가 아닙니다. 일흔 다섯인 본인이 어떤 영화를 누리겠다고,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이 노구를 이끌고 난생처음으로 이런 기자회견을 하겠습니까?
자신과 그 부친의 잘못이나 억압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예의와 반성, 사과가 있었다면 오늘 본인은 이 자리에 서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과오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가 미래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대통령 예비후보 등록을 취소하고, 자신과 부친의 잘못에 대해 평생 참회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 것입니다.
(최 염 약 력)
1933년 경북 경주시 교동 69번지 출생
1956년 현 영남대학교 전신인 대구대학 경제학과 4년 졸업
1958년 심계원 재직
1960년 4.19혁명 이후 대구대학 재단 재직
1963년 이후 약 3년간 대구대학 재단 상무이사 재직
현재 경주최씨 중앙종친회 명예회장, 성균관 고문
본인 최염은 1947년 9월 22일 영남대학교 전신인 대구대학을 설립한 최준의 장손자로서 다년간 대구대학의 재단에서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주지하듯이, 현재의 영남대학교는 본인의 조부인 최준이 설립한 대구대학과 최해청이 설립한 청구대학이 1967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주도로 통합되어 설립된 학교입니다. 통합 당시 영남대학교의 탄생과정을 직접 목격한 유일한 사람으로서 통합과정을 다음과 같이 기억합니다.
대구대학의 영남대학교로 강제 통합
본인은 1967년 반도호텔 924호에서 열린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의 합동이사회에 본인의 조부이자 대구대학의 설립자인 최준을 모시고 참석해서 영남대학교가 출범하게 된 장면을 직접 자세히 목격했습니다. 조부께서는 좀 더 나은 학교의 발전을 위해서 당시 삼성의 이병철 회장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잘 운영하라고 대구대학의 재단을 넘긴 바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이병철 회장이 일언반구의 협의도 없이 대구대학을 포기하고 영남대학의 설립에 동의한다고 하여,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조부께서는 당시 대구대학 이사장인 이병철을 불러오라 하였으나 실현되지 못했고, 그 후 합동이사회의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기에 중도에 퇴장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으로 영남대학교가 탄생된 것입니다.
박정희의 주변 인물들로 이사진이 포진된 청구대학과 이병철이 재단이사장으로 있던 대구대학이 영남대학교로 통합된 것은 박정희의 막강한 힘으로 보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병철이 대구대학을 아무런 조건 없이 운영권을 넘겨준 본인의 조부와 그 어떤 상의도 없이 박정희 정권에게 헌납한 것도 박정희의 힘 앞에 생존을 위해 무릎을 꿇은 것이라는 지적도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 후 학교법인 영남학원은 나의 조부를 몇 년간 이사로 등재시켰다가, 법인을 독점하기 위해 어느 날 아무런 기별도 없이 퇴임시키는 전횡을 일삼았습니다.
돈 한 푼도 안내고 영남대학교의 실질적 주인이 된 박정희는 10.26사태로 죽고, 전두환의 권력이 맹위를 떨치는 1980년 학교법인 영남학원 이사장에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취임하였습니다. 박근혜는 그 후 1989년까지 이사로 재직하였고, 1988년 국회 국정감사를 받을 때는 조일문 전 건국대 총장이 이사장 자리에 있었습니다.
영남학원 교주 박정희 선생, 박근혜 당시 이사장 작품
별첨하는 학교법인 영남학원 정관과 1988년 국회 국정감사 사본에서 알 수 있듯이, 정관 제1조(목적)는 “이 법인이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교주 박정희 선생의 창학 정신에 입각하여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입니다.
박정희 사후 1981년 당시 이사진 7명 중 박근혜, 한준우(정수장학회 이사), 신기수(정수장학회∙육영재단 이사), 유연상(육영수 여사 조카사위∙육영재단 이사), 류준(당시 이사장∙육영재단 이사) 등에 의해 정관 1조에 그간 없었던 교주라는 문구가 삽입이 된 채로 정관 변경이 되어 문교부로부터 승인을 받았고, 현재까지도 유효한 조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작고한 김동영 의원과 박관용 의원 등의 질의와 조일문 이사장 및 권혁기 총장 서리의 답변을 보면, “교주라는 표현은 사실상 법적인 것은 아니고 왜 교주라는 표현을 정관에 넣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조일문 이사장)라고 말하면서, 조일문 이사장도 “교주라는 표현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대명천지에 지금도 “교주 박정희 선생”이란 말이 가능할 수 있습니까.
나아가 소위 교주인 박정희가 재단에 출연한 자금의 액수에 대해 조일문 이사장은 “문서상 나타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답하고, 1980년 이사장을 지내고 1988년 국감 당시 재단 이사로 재직 중인 박근혜가 출연한 액수에 대해서도 묻자, “그것도 나타나 있는 것이 없습니다”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돈 한푼도 출연하지 않고 지금까지 교주 노릇을 하고 있는 박정희, 역시 돈 한 푼 내지 않고 재단 이사장과 이사노릇을 버젓이 했던 박근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이런 것이 항상 원칙을 강조하는 박근혜의 원칙이란 말입니까.
부동산투기의 효시, 대학교 부지 매각
박정희는 또한 자기 돈은 한 푼도 안들이고 경산군 압량면 일대 105만 여 평의 교지를 매수하면서 매매협의가 안되고 있는 땅을 군수와 경찰서장을 동원하여 강제로 매입하였다는 소문이 자자하였는데, 땅의 매수가격이 얼마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더욱 놀랄 일은 그 땅 가운데 일부인 십 여 만평을 1974, 5년 경 한국조폐공사 경산공장 부지로 매각했다고 하는데, 그 매도가격이 얼마였는지에 대해서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이 작금의 망국적인 부동산 투기의 효시일 것입니다.
최근에도 당시 억울하게 빼앗긴 구지주들이 현우동 영남대학교 총장을 찾아와 그 때 억울하게 빼앗기지 않았다면 우리는 얼마나 큰 부자가 되었을 터인데 하면서, 광활한 학교부지를 자기들에게 경작이라도 하도록 해달라는 청원이 자주 있다고 합니다.
돈도 한 푼도 안들이고 대통령의 직권을 남용한 투기로 얻은 막대한 차익으로 바로 오늘날 영남대학교가 건립되었다는 것, 그의 딸이 재단 이사장과 이사 노릇을 하였다는 것은 앞으로 분명하게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박근혜가 박정희 사후 세계의 자유국가 어디에도 없을 “교주”라는 기상천외한 정관을 만들었다는 것은 만인이 공노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이러한 정관을 승인한 당시 교육당국의 처사도 비난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헐값에 매도된 선산들, 매도액은 어디로?
또한 경남 울주군 두동면 구미리 산 224(28,530평, 91년 공시지가 3,300원, 계 9,415만원), 220(75,300평, 91년 공시지가 29,370원, 계 22억 1,156만원) 소재 본인의 조부님이 기부한 땅 10만 여 평을 1988년 1월 11일 학교법인 영남학원이 매도한 적이 있습니다. 200여년 전에 모신 본인의 조상 묘 3위가 계시는 이 땅은 감정가액이 4,700만원, 매도금액이 7,690만원으로 평당 760원 정도로 매각되었습니다.
김동영 의원이 질의에서 이 땅이 적어도 평당 5만원 이상은 된다고 했지만, 본인은 그 이상 된다고 확신했고, 또 선산분묘가 계시는 그 땅을 되찾는 것이 후손의 도리라 생각되어 대구대학 재단 사무장을 지낸 최정(9촌 숙)을 대동하고 당시 이사장인 조일문을 서울 마포구 상수동 소재 자택으로 방문했습니다. 거기서 본인은 아직 매매계약이 안된 상태이니 매매 계약 진행을 중단하고 7,690만원의 두 배라도 지불할테니 본인과 계약할 것을 제안하였지만, 조일문은 구두약속도 계약이라는 이유로 다음날 갑자기 계약을 해버렸습니다.
여기에 여당 울산지역 국회의원이자 민정당 사무차장이었던 김태호가 개입되어 그렇게 헐값으로 매도했다는 지적도 있으나, 집권당 사무차장인 일개 국회의원의 전화 한마디로 당시 막강한 권력의 비호를 받고 있는 박근혜가 순순히 매도한 것이 아니라 재단의 실질적 운영자인 재단이사 박근혜와 그 측근들이 매도가격의 몇 배가 되는 금액을 매수자로부터 별도로 받기로 했기에 본인과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고 본인은 굳게 믿고 있습니다. 나아가 박정희 유물관을 지을 경비를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문교부에 이 땅의 매도 승인 신청을 제출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또한 본인의 7대 조모님 산소가 위치한 경주시 구정동 산 39번지 임야 10,920평 및 산 43번지 임야 1,920평도 매각(1990년 공시지가 평당 180,000원, 계 23억 1,120만원)되었는데, 본인의 7대 조모님 산소가 위치한 이 땅은 그 일대가 온천지구로 고시되어 100억원 이상의 시세가 형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거의 거저인 단돈 4억원에 차모씨에게 매도되었습니다. 나중에 차모씨를 추궁한 결과 매매대금은 11억원인데 세금이 많이 나와 계약서 상에는 4억원으로 기재하고 7억원은 별도로 지불했다는 것입니다.
본인의 조부님이 기부한 땅이 매도된 1988년은 박근혜와 그의 측근들이 재단이사로 재직하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학교 재단의 이런 행태는 법적으로 또 도의적으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것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이 땅의 매도 금액이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도 전혀 분명치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문도 소상히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
1988년 국정감사가 있은 후 박근혜는 국감의 지적에 정곡을 찔렸는지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진 전체의 사표를 제출케 하고, 6-7 트럭 분의 박정희 유품과 서류 등을 싣고 학교 당국도 모르게 야간도주하듯 영남대학교를 떠난 후 오늘날까지 아무런 반성이나 사죄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본인의 주변 법조인이나 친지들은 왜 그 당시의 이러한 불법 행위를 고발하지 않고 있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곤 했습니다. 본인은 그 당시가 박정희 정권을 이은 전두환, 노태우 정권 이라는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박근혜는 직접 행동하지 않았다든지 하는 등으로 형사 처벌이 유예되거나 성립되지 않을 가능성이 엿보였기에 잘못하면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또 법적 책임은 그 죄목에 따라 시효기간이 다르지만, 도덕적 책임은 시효가 없다는 본인의 평소 소신에 따라 고발하지 않았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본인의 조부님이 민족 교육을 위해 사재를 털어 설립한 대구대학을 강제로 탈취한 박정희 정권의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작태, 영남학원에 한 푼의 돈도 기부하지 않은 채 버젓이 재단 이사장과 이사 노릇을 한 박근혜의 뻔뻔스러움, 순수하고 투명해야 할 교육기관 영남학원에서 벌어졌던 여러 불투명성을 밝히는 데에 온힘을 다 바칠 것입니다.
본인은 한나라 당원이 아닙니다. 당원도 아닌 사람이 남의 경선에 왈가불가 하는 모습이 좋지 않아 검증신청을 하지 않을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대통령을 하겠다는 박근혜가 일개 대학운영을 불법투성이로 자행하고 법에도 없는 교주 운운하며 귀중한 재단 재산을 헌신짝 같이 투매하여 박정희가 특혜로 인가해준 영남투자금융까지 운영부실로 IMF로 인해 퇴출케한 원인을 조성하고, 오늘날 학교 법인 영남학원의 재산을 300년 내려온 경주의 가대(家垈) 밖에는 없도록 만든 책임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면책될 수 없다고 본인은 생각합니다.
본인의 조부님은 한국 현대사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산 증인으로 지목되곤 하는 경주 최부자 집의 마지막 분이십니다. 온 재산을 나라의 독립과 이웃사랑 그리고 후학 양성에 사심 없이 바치셨던 분이십니다. 저는 이런 조부님을 늘 존경해 왔습니다. 한나라당 검증 위원회의 철저한 조사와 박근혜의 진실된 고백을 요구합니다. 그래야 억울한 일을 당하셨던 조부님도 하늘에서 편히 눈을 감으실 것이고, 본인 또한 후손으로서 약간의 면책을 받을 것이며, 나아가 이 나라의 정의와 원칙이 바로 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본인의 이런 마음을 헤아려서 많은 분들의 관심과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7년 6월 26일
최 염 (崔 炎)
학교법인영남학원 정관
법 인 이 사 회 통과일자 : 2007. 2.27.
교육인적자원부 인가일자 : 2007. 3. 12.
제 1 장 총 칙
제 1조(목적) 이 법인은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교주 박정희 선생의 창학정신에 입각하여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 2조(명칭) 이 법인은 학교법인 영남학원(이하 “법인”이라 한다)이라 한다.
제 3조(설치학교) 이 법인은 제1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음 각 호의 학교를 설치 경영한다.
1. 영남대학교
2. 영남전문대학(교명은 영남이공대학 이라 한다)
제 4조(주소) 이 법인의 사무소는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317의 1번지에 둔다.
제 5조(정관의 변경) 이 법인의 정관의 변경은 이사 정수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에 의한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제 2 장 자산과 회계
제 1 절 자 산
제 6조(자산의 구분) ① 이 법인의 자산은 기본재산과 보통재산으로 구분하되, 기본재산은 교육용 기본재산과 수익용 기본재산으로 구분하여 관리한다.
② 기본재산은 별지 목록의 재산과 제11조의 규정에 의한 적립금 및 기타 이사회의 의결에 의하여 기본재산으로 정하는 재산으로 한다.
③ 보통재산은 제2항에서 정하는 이외의 재산으로 한다.
제 7조(재산의 관리) ① 제6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한 기본재산을 매도, 증여, 교환 또는 용도를 변경하거나 담보에 제공하고자 할 때에는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관할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② 기본재산과 보통재산의 운영과 관리에 관하여는 법령과 이 정관에 특별히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사회에서 따로 정한다.
제 8조(경비와 유지방법) 이 법인의 경비는 기본재산에서 나는 과실과 수익사업의 수익과 기타의 수입으로 충당한다.
영남학원 설립당시 임원
이사장(임기 4년) 이동녕 4대 민의원 / 6-7대 국회의원
<이 사 명단>
-이효상(임기 4년) 공화당 총재 / 5선 의원, 국회의장(6-7대)
* 아들 이문조(영남대 교수)
-김성곤(임기 4년) 4대 민의원 / 6,7,8대 국회의원, 공화당 재정위원장, 공화당 중앙위의장
-성상영(임기 4년)
-이후락(임기 4년) 10대 국회의원 / 6대 중앙정보부 부장 / 3대 대통령 비서실 실장
-최 준(임기 4년) 대구대학 설립자
-한석동(임기 4년)
-신현확(임기 2년) 부흥부 장관 / 보건사회부 장관 /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 국무총리직 수행 / 9-10대 국회의원
-서정귀(임기 2년)
-백남억(임기 2년) 공화당 정책위의장, 당의장 / 6,7,8,9대 국회의원
-신기석(임기 2년) 9대 국회의원 / 공화당 국토통일위원장, 헌법개정심의위원
-여상원(임기 2년)
-김 인(임기 2년) 8대 국회의원 / 경북도지사
<감 사 명단>
-오일룡(임기 2년)
-이상근(임기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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