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전 정주영의 '기술 도둑질'과 지금
<뷰스 칼럼> 그때 일본엔 돈 받고 기술 빼준 일본인은 없었다
연일 '기술 도둑질'이 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얼마 전에는 현대기아차 전현직 직원들이 22조원 가치의 자동차 핵심기술을 중국 자동차사에 몰래 판 혐의로 구속돼 충격을 안겨주더니, 이번에는 15조원대 가치의 최첨단 와이브로 기술을 미국에 빼내 팔려던 일당이 구속됐다.
이들 기술은 절체절명의 샌드위치 위기에 몰린 우리 기업들이 천문학적 연구개발비를 투입하고 엔지니어들이 밤을 새워 아이디어를 짜내 가까스로 이룩한,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런 만큼 딴나라 경쟁사들이 호시탐탐 군침을 흘리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30여전 정주영 회장의 '기술 도둑질'
'기술 도둑질'은 사실상 국제적 관행이다. 내로라하는 국제 다국적기업들도 지금도 쉼없이 시도하고 있으며, 경제입국의 꿈을 꾸고 있는 신흥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70년대 들어 박정희 대통령이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할 때 일이다. 중화학공업화의 6대 핵심산업중 하나가 조선업이었다. 문제는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당시 최대 재벌그룹 회장은 박대통령에게 "나는 배만 타면 멀미가 난다"라는 유명한 고사 이유를 밝히기까지 했을 정도다. 이때 자의반 타의반으로 조선업을 떠맡은 총수가 정주영 당시 현대건설 회장이었다.
그후 선박왕 오나시스 처남을 만나 도크도 안 판 채 배부터 수주한 정회장의 현대조선(현재의 현대중공업) 건설 신화는 익히 잘 알려진 사실로 재론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90년대초 기자는 현대중공업 창립 공신을 만나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비사(秘史) 한 토막을 들을 수 있었다. 이른바 '도둑질 비사'다.
어렵게 배를 수주하고 수출입은행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도크를 파면서 현대조선이 당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기술력'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조선업계가 만든 가장 큰 배는 1만5천톤급이었다. 그러나 현대가 수주한 배는 30만톤급이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 지 막막했다.
현대조선에게 필요한 기술력을 갖춘 곳은 당시 세계 조선업계를 평천하하던 중인 일본 조선업계였다. 그러나 당연히 일본조선업계는 한국을 극도로 경계했다. 한국에 도움을 줬다간 호랑이 새끼를 키우는 우(愚)를 범할 게 불을 보듯 훤했기 때문.
정주영 회장의 살아 생전 별명이 '기생'이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상대방에게 간도 쓸개도 다 빼주면서까지 접근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정 회장은 평소 친분이 있던 일본 K조선의 회장에게 지극정성을 다하기 시작했다. 상대방이 녹아떨어질 때까지 공을 들였다. 마침내 끝없는 접대에 미안해진 K조선 회장이 "뭐 도와줄 게 없냐"고 말했다. 이때 정회장이 한 부탁은 "단 2명의 연수생을 K조선에 1년간만 받아달라"였다. K조선 회장은 선뜻 이 부탁을 들어줬다. 정회장의 속셈은 뻔히 들여다 보이는 것이었으나, 거대한 조선업의 실체를 단 2명의 연수생 갖고서 1년내에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렇게 해서 현대조선의 젊은 두 직원이 일본 K조선으로 연수를 떠났다. 이들에게 내려진 '특명'은 간단했다. "뭐든지 도움이 될만한 것은 다 갖고 오라"였다. 이때부터 두 직원은 해면이 물을 빨아들이듯 닥치는대로 모으고 기록했다. 불법도 마다하지 않았다.
당시 일본은 한달때 한번씩 우리나라의 민방위훈련과 비슷한, 지진 대피훈련을 받았다. 사이렌이 울리면 모든 직원이 대피소로 피해야 했다. 이때 현대조선 두 직원은 화장실에 숨어있다가 아무도 없을 때 나와 K조선이 보여주지 않던 설계도면을 몰래 꺼내보고 카피했다. 퇴근때에는 몽키 스패너 한자루도 몰래 품속에 넣고 나왔다. 조선소에서 볼트너트를 조일 때 사용하는 몽키 스패너는 일반의 그것과 달랐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은 자료를 쉼없이 국내로 보냈다. "이때 가져온 게 콘테이너 두대 분량은 족히 됐다"고 창업공신은 전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오늘날 현대중공업은 일본의 내로라하는 조선소들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30여년전 일본에는 돈 받고 기술 빼낸 '일본인'은 없었다
혹자는 반문할 지도 모른다. "우리도 기술 도둑질을 해서 오늘의 자리에 올랐는데 중국 등이 기술 도둑질을 하는 것을 뭐라 할 처지가 못되는 게 아니냐"라고.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반문은 우리 기술을 빼내려 하는 중국인 등이 할 수 있는 반문이지, '한국인'이 할 반문은 결코 못된다. 30여년전 우리가 일본에서 '기술 도둑질'을 할 때 우리에게 돈을 받고 기술을 빼준 '일본인'은 결코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연일 목격하는 '기술 도둑질'의 가장 심각한 점은 '한국인'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소한의 '민족공동체 의식'마저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책임은 개인뿐 아니라, 해당기업에도 있을 것이다. 직원들의 기업 소속감이 희박하다는 얘기도 되기 때문이다. 연구개발의 성과를 오너가 독식하는 시스템이 그 한 원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근원적 원인은 우리사회에 전례없이 팽배한 '물신주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과정'은 의미 없어졌다. '결과'만이 중요할 뿐이다.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돈만 많이 벌면 그만인 사회가 됐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수단'은 중요치 않다. 야합을 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집권만 하면 그만인 '정치 물신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 됐다.
우리 사회 전체가 물신주의의 노예가 된 국면이며, 최근 잇따르고 있는 '기술 반출'도 이처럼 우리 사회에 팽배한 물신주의의 필연적 산물이다.
한 기술엔지니어의 '현대판 을지문덕론'
다행인 것은 아직 우리 사회의 물신주의가 치유불능의 상태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매국적 '기술 도둑질'을 하는 자들은 아직은 한줌뿐이다.
필자가 아는 현대중공업의 한 중견간부는 지금도 틈만 나면 직원들을 모아놓고 귀에 못이 박히게끔 역사강의를 하고 한다.
"우리는 현대판 을지문덕 장군이 돼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 1백년간 가공스런 중국의 도전으로부터 우리의 조선산업을 지켜내야 한다. 마치 수나라 30만 침략군을 살수에 수장시킨 을지문덕 장군처럼 말이다."
그에게 왜 이런 강의를 하냐고 물었다. 그는 말했다. "역사의식이 결여된 기술자는 우리국가에 치명적 해악을 끼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사명감을 가져야지, 월급만 받겠다고 직장을 다니면 너무 비참하지 않냐."
이들 기술은 절체절명의 샌드위치 위기에 몰린 우리 기업들이 천문학적 연구개발비를 투입하고 엔지니어들이 밤을 새워 아이디어를 짜내 가까스로 이룩한,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런 만큼 딴나라 경쟁사들이 호시탐탐 군침을 흘리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30여전 정주영 회장의 '기술 도둑질'
'기술 도둑질'은 사실상 국제적 관행이다. 내로라하는 국제 다국적기업들도 지금도 쉼없이 시도하고 있으며, 경제입국의 꿈을 꾸고 있는 신흥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70년대 들어 박정희 대통령이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할 때 일이다. 중화학공업화의 6대 핵심산업중 하나가 조선업이었다. 문제는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당시 최대 재벌그룹 회장은 박대통령에게 "나는 배만 타면 멀미가 난다"라는 유명한 고사 이유를 밝히기까지 했을 정도다. 이때 자의반 타의반으로 조선업을 떠맡은 총수가 정주영 당시 현대건설 회장이었다.
그후 선박왕 오나시스 처남을 만나 도크도 안 판 채 배부터 수주한 정회장의 현대조선(현재의 현대중공업) 건설 신화는 익히 잘 알려진 사실로 재론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90년대초 기자는 현대중공업 창립 공신을 만나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비사(秘史) 한 토막을 들을 수 있었다. 이른바 '도둑질 비사'다.
어렵게 배를 수주하고 수출입은행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도크를 파면서 현대조선이 당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기술력'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조선업계가 만든 가장 큰 배는 1만5천톤급이었다. 그러나 현대가 수주한 배는 30만톤급이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 지 막막했다.
현대조선에게 필요한 기술력을 갖춘 곳은 당시 세계 조선업계를 평천하하던 중인 일본 조선업계였다. 그러나 당연히 일본조선업계는 한국을 극도로 경계했다. 한국에 도움을 줬다간 호랑이 새끼를 키우는 우(愚)를 범할 게 불을 보듯 훤했기 때문.
정주영 회장의 살아 생전 별명이 '기생'이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상대방에게 간도 쓸개도 다 빼주면서까지 접근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정 회장은 평소 친분이 있던 일본 K조선의 회장에게 지극정성을 다하기 시작했다. 상대방이 녹아떨어질 때까지 공을 들였다. 마침내 끝없는 접대에 미안해진 K조선 회장이 "뭐 도와줄 게 없냐"고 말했다. 이때 정회장이 한 부탁은 "단 2명의 연수생을 K조선에 1년간만 받아달라"였다. K조선 회장은 선뜻 이 부탁을 들어줬다. 정회장의 속셈은 뻔히 들여다 보이는 것이었으나, 거대한 조선업의 실체를 단 2명의 연수생 갖고서 1년내에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렇게 해서 현대조선의 젊은 두 직원이 일본 K조선으로 연수를 떠났다. 이들에게 내려진 '특명'은 간단했다. "뭐든지 도움이 될만한 것은 다 갖고 오라"였다. 이때부터 두 직원은 해면이 물을 빨아들이듯 닥치는대로 모으고 기록했다. 불법도 마다하지 않았다.
당시 일본은 한달때 한번씩 우리나라의 민방위훈련과 비슷한, 지진 대피훈련을 받았다. 사이렌이 울리면 모든 직원이 대피소로 피해야 했다. 이때 현대조선 두 직원은 화장실에 숨어있다가 아무도 없을 때 나와 K조선이 보여주지 않던 설계도면을 몰래 꺼내보고 카피했다. 퇴근때에는 몽키 스패너 한자루도 몰래 품속에 넣고 나왔다. 조선소에서 볼트너트를 조일 때 사용하는 몽키 스패너는 일반의 그것과 달랐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은 자료를 쉼없이 국내로 보냈다. "이때 가져온 게 콘테이너 두대 분량은 족히 됐다"고 창업공신은 전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오늘날 현대중공업은 일본의 내로라하는 조선소들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30여년전 일본에는 돈 받고 기술 빼낸 '일본인'은 없었다
혹자는 반문할 지도 모른다. "우리도 기술 도둑질을 해서 오늘의 자리에 올랐는데 중국 등이 기술 도둑질을 하는 것을 뭐라 할 처지가 못되는 게 아니냐"라고.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반문은 우리 기술을 빼내려 하는 중국인 등이 할 수 있는 반문이지, '한국인'이 할 반문은 결코 못된다. 30여년전 우리가 일본에서 '기술 도둑질'을 할 때 우리에게 돈을 받고 기술을 빼준 '일본인'은 결코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연일 목격하는 '기술 도둑질'의 가장 심각한 점은 '한국인'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소한의 '민족공동체 의식'마저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책임은 개인뿐 아니라, 해당기업에도 있을 것이다. 직원들의 기업 소속감이 희박하다는 얘기도 되기 때문이다. 연구개발의 성과를 오너가 독식하는 시스템이 그 한 원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근원적 원인은 우리사회에 전례없이 팽배한 '물신주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과정'은 의미 없어졌다. '결과'만이 중요할 뿐이다.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돈만 많이 벌면 그만인 사회가 됐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수단'은 중요치 않다. 야합을 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집권만 하면 그만인 '정치 물신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 됐다.
우리 사회 전체가 물신주의의 노예가 된 국면이며, 최근 잇따르고 있는 '기술 반출'도 이처럼 우리 사회에 팽배한 물신주의의 필연적 산물이다.
한 기술엔지니어의 '현대판 을지문덕론'
다행인 것은 아직 우리 사회의 물신주의가 치유불능의 상태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매국적 '기술 도둑질'을 하는 자들은 아직은 한줌뿐이다.
필자가 아는 현대중공업의 한 중견간부는 지금도 틈만 나면 직원들을 모아놓고 귀에 못이 박히게끔 역사강의를 하고 한다.
"우리는 현대판 을지문덕 장군이 돼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 1백년간 가공스런 중국의 도전으로부터 우리의 조선산업을 지켜내야 한다. 마치 수나라 30만 침략군을 살수에 수장시킨 을지문덕 장군처럼 말이다."
그에게 왜 이런 강의를 하냐고 물었다. 그는 말했다. "역사의식이 결여된 기술자는 우리국가에 치명적 해악을 끼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사명감을 가져야지, 월급만 받겠다고 직장을 다니면 너무 비참하지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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