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들 "한국 이래서 신뢰 못한다"
<뷰스칼럼> TCW, 씨티그룹,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
월가의 대표적 모기지펀드 운용회사인 TCW의 지난 11월26일자 한국 보고서 제목이다.
TCW "한국정부, 이래선 투자자 신뢰 회복 못시킨다"
보고서는 "한국경제는 곧 경기침체(리세션)로 빠져들 것"이라며 "한국은 '열린 경제'이기 때문에 대다수 이웃 아시아국가들과는 대조적으로 갑작스런 무역 및 자본 이동에 취약하며, 동시에 내년 내내 실물경제 및 금융을 짓누를 심각한 국내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어 "한국정부는 최근 수많은 안정책을 발표하고 있으나, 이는 외부충격을 이겨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며 국내적 불균형을 해소하기에도 적합치 않고,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시킬 수도 없다"고 힐난했다.
TCW 보고서는 한국을 바라보는 외국계의 대체적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 해도 지나친 과장이 아니다. 한국이 지금 직면한 위기는 심각하기 짝이 없으나 정부 대응이 너무 안일하고 불신만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 특히 최근의 지지부진한 건설-조선-저축은행 등 부실 구조조정이 외국계의 실망을 증폭시키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씨티의 비웃음 산 한은의 군색한 해명
외국계 불신을 증폭시키는 예는 부지기수로 많다. 한국은행이 2일 시중은행들에게 입찰한 40억달러만 해도 그렇다. 이 40억달러는 미연준(FRB)에서 들여온 것이다.
지난 10월29일 300억달러 통화스왑을 체결했을 때만 해도 정부는 "체결에 의의가 있지, 들여와 쓸 일은 없을 것"이라고 호언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한달만에 들여와야 했다. 이날 응찰액은 78억달러. 2대 1에 가까운 치열한 경쟁률을 보였다. 시중은행들의 달러화 기근 사태가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은의 한 관계자는 40억달러 차입 이유를 언론에 대해 "300억달러를 한푼도 안 쓰면 미국이 만기인 내년 4월에 한국에 통화스왑이 필요없는 것으로 생각할까봐 들여온 것"이란 주장을 했다. 쓰지 않아도 되는데 내년 4월 만기연장을 위해 썼다는 식이다.
이 말을 국제사회는 곧이 곧대로 믿을까. 씨티그룹은 지난 11월28일 <한국경제 브리핑>이란 보고서를 통해 전혀 다른 분석을 했다.
보고서는 "장기자금 유입 실패로 한국의 단기외채 비중이 3분기에 사상 최고로 급증했다"며 "반면에 한국의 시장 개입이 계속되면서 외환보유고가 급속히 줄어, 10월 한국의 단기외채 대 외환보유고 비율이 98%로 급증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분석했다. 1년내 갚아야 할 단기외채가 외환보유고에 맞먹는 위기 상황이 도래했다는 지적.
보고서는 "한국 외환당국이 요즘 외환시장 개입에 수동적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 비율이 100%를 넘어섰기 때문"이라며 "한국이 미연준에서 40억달러를 빌려온 것도 이 비율을 100% 아래로 낮추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풀이했다.
실제로 이 보고서가 나온 직후 한은은 1년내 갚아야 할 외채는 2천271억2천만달러라고 발표했다. 씨티 분석대로 외환보유고보다 단기외채가 많아진 것. 외국계가 왜 한국을 불신하는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이 한국 모니터링 담당"
한국은행의 전직 고위임원은 최근 "애당초 외국을 속일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외국이 한국을 속속 들이 알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를 들었다.
"미연준 밑에 12개 연방은행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속한 미국의 지역경제만 들여다보는 곳이 아니다. 미연준은 미국의 중앙은행인 동시에, 미국의 세계통치기구중 하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각 연방은행마다 모니터링해야 할 국가들이 배정돼 있다.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에서 맡고 있다. 한국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치사회 상황이 어떤지 귀신같이 알고 있다."
지난 2000년 10월, 김정태 당시 주택은행장도 한국기업중 최초로 주택은행을 미국 월가에 상장시킨 뒤 귀국해 "월가가 우리보다도 한국을 더 샅샅이 파악하고 있더라"고 놀라움을 표시한 바 있다.
"상장 심사를 받는데 가장 곤혹스런 것이 보도듣도 못한 자그마한 국내 언론매체 보도까지 끄집어내 '여기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질문이었다. 완전히 우리나라를 현미경처럼 샅샅이 들여다보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최근 위기설이 다시 난무하고 있다. 시장의 각종 위기설에 청와대 대통령실장까지 가세하면서 위기설은 급속 확산되는 양상이다. 위기의 본질은 '신뢰 부족'이다. 주먹구구식 대응이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외국계와 외국언론 보도에 "강력 대응" 운운하기에 앞서 어떻게 하면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을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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